제목 |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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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8-05-28 | 조회수926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 마르코10,32-45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차마 가기 싫었던 형극의 길>
지난 성목요일 밤, 세족례 예식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늘 해오던 세족례 예식이었지만, 올해는 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 앞에 허리를 굽혀 발을 씻겨주던 순간, 아이들의 발을 수건으로 감싸 닦아주던 순간 2000년 전 똑같은 모습으로 제자들 앞에 허리를 굽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한 부족한 인간의 발을 씻어주시던 그 모습, 그 발에 입을 마주시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습니다.
제발 좀 겸손하라고, 끊임없이 낮아지라고 그렇게도 강조했지만 그저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던 제자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도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 우리를 위해 최후의 방법, 극단적인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제자들(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 역시 마찬가지로 아직도 갈 길이 멀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핵심제자단에 속해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하는 말들 좀 보십시오.
“스승님, 소원이 있습니다. 꼭 들어 주십시오. 스승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두 사람이 예수님께 지금 청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게도 이 세상의 권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정권을 잡으시면 국무총리나 당 대표 정도를 시켜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께서는 지금 죽어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시는데, 진정 살 떨리는 공포의 골고타 언덕을 서서히 올라가고 계시는데, 철없는 두 제자는 ‘물 좋은 자리’ 운운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실 고난의 잔 때문에 괴로워 죽겠는데, 개념 없는 두 제자는 앞으로 연봉이 얼마가 될 것이며, 골프장은 어디가 좋으며... 이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진리는 참 진리이지만 어쩌면 제자들에게 있어 생각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진리,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진리, 따르고 싶지 않은 진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환호 속에 걸어가는 영광과 승리의 메시아만 선호했지 수난 받는 메시아, 참혹하게 사람의 손에 죽어간 고통과 순명의 메시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난 당하시는 하느님, 겸손하신 예수님, 봉사하고 섬기는 데 전공이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이웃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란 생각 말입니다. 이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일평생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것이겠지요. 한평생 지속된 겸손의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일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메시아를 기다립니까?
혹시라도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다분히 이기적인 욕구들을 우리가 청할 때 마다 즉각적으로 들어주시는 나만의 메시아가 아닌지요?
혹시라도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 것들에 모든 것을 걸라고 속삭이는 가짜 메시아는 아닌지요?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는 군림이나 명령과는 거리가 먼 메시아셨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메시아셨습니다. 현세적 축복이나 안녕만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는 마술사 같은 메시아가 절대 아니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호화찬란한 왕궁은 고사하고 초라한 여인숙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겸손의 왕이셨습니다. 쓰디쓴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아 마셔야 했던 고통의 왕이셨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눈물을 머금고 차마 가기 싫었던 형극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슬픔의 왕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셨던 섬김의 왕이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71번 / 평화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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