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고 꾸짖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감정 가운데 하나로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천박하며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화입니다.
화내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감정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며 사실,
그와는 반대로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셨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거룩함을 실추시켰다기보다는
당신께서 온전한 인간이시며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감정의 폭을 경험하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적절하게 느끼고 정당한 표현이 될 때
화내는 것은 전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극도로 화를 내시는 장면은
마태오 복음에서 잘 나타나며 이 안에서 예수님께서 화내시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친구들에게 욕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시기도 하셨으나 노하실 때는,
적당한 욕을 섞어가며 화를 내시는 것을 주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물과 장소에 대해서도 화를 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으며
코라진과 베싸이다와 같은 장소에 대해서도 욕을 퍼부으셨습니다.
이 두 대상에게 하신 예수님의 태도는 가혹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죄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화를 내실 때 중요한 대상 가운데 한 부류는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 파렴치한 두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화를 내시면서 그들을 향해
“독사의 족속, 눈먼 인도자, 어리석은 자,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그리고 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며 욕을 퍼부으십니다.
노기를 띠시며 “위선자”라는 말을 일곱 번이나 사용하시는 것은
수 차례 말씀을 하셨는데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약점을 공격하지는 않으셨으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불의를 보셨을 때,
그 불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 알려 주셨습니다.
화를 낼 때 예수님은 결코 엉뚱한 사람을 지적하며 화를 내지 않으셨고
어떠한 폭력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은
그러한 행위가 그분의 사랑, 자비 그리고 연민의 정과 상충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화와 진정한 사랑과 결코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성적표에 D 학점이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내는 것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화나게 한 상황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에도, 다시 화를 내셨고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려 주셨으며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셨습니다.
때때로 그분은 화낼 이유도 없고
더 이상 화낼 만한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셨다면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입니다.
죄인이 하는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삶에서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익혀야 하고
본받아야 하는 행위들입니다.
반대로, 신체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묵과해 버리는 등의
부적절한 방식으로 화를 처리해서는 안됩니다.
화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화를 내는 방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사소한 일로, 부적절하게 그리고 균형을 잃으면서 화를 낼 때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화를 내십시오. 그러나 죄는 짓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