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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대로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1 조회수544 추천수8 반대(0) 신고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것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생겨났다”고 하신 그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은 손으로 뭘 만들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는데, 예수님이 바로 그 말씀이시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사실은 그분 자신이 이 세상의 소금이셨고,
그분이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하셨을 때
그분 스스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구원이란 선물을 주신 분이시다.
그분은 말씀하신 그대로 사신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말씀”이다.
하느님의 입에서 뱉어진 말씀 그 자체이시고,
당신 스스로 말씀하신 그대로 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 이라고 했을 때,
반석위에 집을 짓는 첫째 조건은 그 말씀을 “듣는” 것이다.

많은 부분 우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말하려고 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어도
목소리를 높여서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이 말씀해도 잘 듣지 않는다.
반석위에 집을 지으려면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달리기를 하는데, 2등을 추월하면 몇 등일까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1등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2등을 추월하면 2등이지 1등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꼴등을 추월하면 몇들일까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꼴등 앞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달리기 시합에서 꼴등을 추월하는 시합은 없다.

그래서 이번엔 답이 2갭니다.
하고 문제를 내기를,
산 넘고 산 넘고 또 산 넘어서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에 사과가 몇 개일까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한다.
하지만 문제내기 전에 답이 2개라고 말하고 질문했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잘 듣지 않는 우리 모습이다.

그리고 반석위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은, “실행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이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하는 명령이지 흘려버릴 잔소리가 아니다.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 들이닥쳐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의 모범은 예수님 자신이시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고 - 전능한 신이 하챦은 인간이 되는 것이 달가운 일일까?
멋진 승용차가 있는데 여기서 부산까지 걸어가라고 하는 것보다 더 귀찮고 성가신 일이 아닐까?

사람들을 가르치고 - 교단에 올라 가르치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교단 밑에서 선생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쉬울까?
죄인들을 훈계하고 - 불량학생들이 약한 동료학생을 발로 차고 때리는 걸 막아낼 수 있을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다리가 후들거려서 세 번이나 십자가 무게에 눌려 땅바닥에 엎어져도 끝까지 그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끝까지 아버지 말씀대로 그대로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한다.

말하는 대로 따라 하는 모범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어린 아이들이다.
미사 시간에 노래 크게 불러봐요 하면 성당 안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른다.

말씀대로, 말 하는 대로 따라 하는 태도는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보니,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대로 하지 않으면 혼날꺼 같은 마음이다.

두려워서 억지로 하는 것은 좋은 모범이 아니지만,
하느님의 거룩한 성심을 상해드릴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노예적인 태도가 아니다.

노예적인 태도로 두려워하는 마음은 루가복음에 나오는 큰 아들과 같은 것이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29-30)

존경과 사랑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이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
튼튼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려면 십자가 고통은 필수적이다.
소의 어깨에 멍에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는 반석은
바로 십자가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그랬듯이 우리도 십자가 위에 우리 몸을 눕혀야지,
유다처럼 은전 서른 닢이라는 돈방석 위에 몸을 눕히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유다가 겨우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부분 우리 인생이 이 재물이 갖고 있는 힘,
그것을 성서는 마몬이라고 하는데,
이 마몬, 즉 탐욕의 화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아버지 말씀대로 끝까지 아버지 말씀대로 사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말씀대로 살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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