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헌금에 대해 말씀하신다. 헌금의 액수보다는 헌금이 그 사람에게 차지하는 비중을 더 강조하신다. 그렇다. 봉헌금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이 가진 전부라면 그보다 더 큰 헌금은 없다.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과부를 보면서 예수님은 성모님을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생전에 어머니는 주일 헌금을 항상 미리 준비해 놓으셨는데, 가장 깨끗한 지폐를 골라 성가 책 속에 넣어두셨다. 어머니는 내게도 꼭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그 가르침 덕분에 지금도 주일 미사 헌금은 신권으로 준비해 봉헌한다. 그리고 교무금에 관해서 잊혀지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머니는 쪼들리는 살림에도 교무금을 생활비의 십일조로 내셨다.
신학생일 때, 주임 신부님이 나를 부르셨다. 당신이 우리 집 사정을 다 아는데 어머님이 교무금을 너무 많이 내시는 것 같다며 어머님이 책정하신 금액의 반이 적힌 교무금 카드를 어머니께 갖다드리라고 하셨다.
그걸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니 어머니는 새 교무금 카드를 다시 주임 신부님에게 가져다 드리고, 배려에 감사하지만 정한 대로 교무금을 내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중간에서 난감한 입장이 되었는데 결국 주임 신부님이 양보(?)하시는 걸로 매듭이 지어졌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니의 그 고집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헌금을 세금에 빗대어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럴 때 화가 난다. 어떻게 헌금을 세금에 비교할 수 있는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그 거룩한 행위를,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내는 한갓 세금 따위와 비교를 하다니, 그것은 마음을 다해 헌금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고, 나아가 하느님마저 모욕하는 행위다. 아까워하며 마지못해 내는 헌금이라면 차라리 내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렙톤 두 닢이지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한 가난한 과부를 보면서 헌금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한번 되돌아보자.
조용상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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