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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곡하지 말자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08 조회수567 추천수7 반대(0) 신고
 
 
 
 
 
 
아이나 어른이나 병원에 가는걸 싫어한다.
배가 아프다고 우는 아이에게 병원가자고 하면 안 아프다고 한다.
기찻길로 걸어가면 위험하다.
기찻길은 기차가 다니는 길이라서 절대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이 아니다.
그걸 무시하고 계속 기찻길을 가면 결국 기차에 치여서 몸이 산산조각 나고 말 것이다.
차에 치이면 시체라도 찾겠지만 기차에 치이면 시체 찾기도 어렵다.
그러니 절대 기찻길로 다녀선 안된다.^^
오늘 화답송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옳은 길 걷는 이에게는 하느님 구원을 보여주리라”
옳은 길은 기찻길에서 벗어나 안전한 길을 가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참으로 자비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이런 예수님이 계시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발길을 향하고
성전 뒤편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기웃거리거나 서성거린다.
이런 영혼들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자비를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왜곡시켜서 제 평안을 구한다.
어떤 나쁜 죄에 대해서도 용서와 자비를 요구하는 구실로 삼는다.
그런 방법으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도 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와서 땅바닥에 내동이치면서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돌로 치라고 하면 하느님의 자비를 거스리게 되고,
용서하라고 하면 죄를 조장하는 셈이 된다.
이 때 예수님은 조용히 계시다가 한 마디 하셨다.
“죄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 오셨다는 성서 말씀을
우리도 이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이용하거나 왜곡시키며 살진 않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은 죄를 지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하루 빨리 죄의 용서를 받아서
안전한 구원의 길을 걷도록 도우려 오셨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며 살고 있다.
어떤 형제분이 성당에 나왔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하기에 돈을 주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란다.
“당신 나한데 감사해야 한다. 착한 일 할 기회를 내가 주었지 않느냐?”
어떤 분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신부님은 예수님 같은 분이 아닙니까
그러니 저 같이 불쌍한 사람을 다정하게 품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십니까?”
그 순간 그가 불쌍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나도 판단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악한 사람 혹은 악은 자기가 불행하다거나 선을 가장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엔 가짜 천사들이 참 많다.
무작정 운명에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든가
현실의 모순에 눈을 감고 내세에만 관심을 갖게 한다든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을 폭력이라 몰아붙인다거나 하는 것이다.
생활 속에 우리도 모르게 행하는 가짜 천사 노릇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에게 현실의 추악함을 되도록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현실의 추악함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추악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추악함을 감출 뿐이다.
그것은 늘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설명되지만 실은 우리 속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선은 편하게 넘어가겠지만
결국 더욱 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추악한채로 방치하고 만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그 추악함을 만든 게 바로 우리, 아이들도 포함한 우리 인간들이라는 사실,
아이들도 그 추악함 속에서 살아가야 하며,
그 추악함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르게 알아들어야 한다.
“아픈 사람은 다 나에게 오너라, 와서 아픈 곳을 나에게 보여라.
그래야 치료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마찬가지로 죄 있는 사람들도 다 나에게로 오너라.
와서 지은 죄를 나에게 고백하여라.
그래야 내가 용서할 수 있지 않겠느냐?
기찻길에서 벗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기차에 치여 죽을 것이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은 죄를 지어도 좋으니 마음껏 죄짓고 살라는 말씀도 아니고,
어떤 죄도 자동적으로 용서된다는 뜻도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자비를 내 편한 대로 왜곡시키지 말자.

당연한 말을 길게 이야기한 듯하다.
하지만 참으로 악한 사람,
인격파탄의 지경에 이른 사람일수록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이용하며 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악을 감추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오히려 그들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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