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불의함은 생각하지 않고 기성 종교인들의 종교적 한계와 허식을 쉽게 비판하곤 한다. 물론 종교인들이 모순되고 규율에 얽매인 부조리와 이율배반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교인으로서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우리는 비판하고 있는 대상만큼의 신앙적 철저함을 지니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서면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문열의 소설 「금시조」가 있다. ‘금시조(金翅鳥)’는 상상의 새로, 머리엔 여의주가 박혀 있고 금빛 날개가 있으며 불을 뿜는다. 주인공 고죽은, 예술은 예술 자체로서 존립해야 한다는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데,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작품을 거둬들여 불태워 버린다. 그리고 그 불꽃 속에서 금시조의 찬란한 비상을 본다. 그가 본 금시조의 환영은 ‘자기 부정의 예술혼’이자 그가 추구한 ‘예술지상주의의 결정체’다. 예술적 완성을 향한 치열함이 아름답게 그려진 이 소설을 통해 하늘나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이 얼마나 철저한지 돌아보게 된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끄신다. 예수님은 그저 율법을 준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신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율법의 규정보다 더 엄격했으면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철저함 앞에서 나는 어떤 자기 부정을 통해, 무엇을 태워버림으로 찬란한 금시조의 비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박혜원(경남 거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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