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예지에서 엽편소설 하나를 본 적이 있다. 불륜에 관한 이야기다. 목욕탕을 빠져나가는 수증기처럼, 사라져 가는 환영과도 같은 남자. 그 허무한 존재를 붙들고 살아가는 한 여자의 씁쓸한 아픔을 그린 이야기다. 하긴 요즘 이야기치고 불륜 아닌 게 있나? 드라마도 소설도 현실도 그렇다. 내가 하면 낭만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사랑, 망상의 극치. 그런데도 그 미망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가 우리 인간일 것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 <화양연화>가 있다. 같은 날 이웃으로 이사 오게 된 두 남녀가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자 동병상련의 처지로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항상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계단에서 그리고 골목에서 스쳐 지나간다. 퇴근할 때도 국수를 사러 갈 때도 서로 눈길만 나눈 채 스쳐간다. 격정적이거나 열정적이지 않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절절하고 애틋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영화는 ‘스쳐 지나감’과 ‘절제’로 인해 고뇌하며 망설이는 기혼 남녀의 심리묘사를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고 애틋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두 사람의 사랑은 불안하고 순간적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다.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꽃같이 스쳐 지나가는 시절일 뿐이다. 미망이다. 하느님 외에는 그 무엇도 온전한 것이 없으며, 인간은 그 누구도 죄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간음한 여자에게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고 하셨던 예수님. 사랑의 표징인 그분께서 왜 이렇게 질타하신 것일까? 제자들에게 더 확실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경고였을까? 하느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 인간도 온전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신 것일 텐데, 그 온전한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치졸하고 못난 존재인지….
예수님은, 단순히 간음행위를 피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정결하지 못한 생각과 욕망까지도 몰아내라고 하신다. 간음을 금지하는 계명은 행위나 말 또는 생각에서조차 육욕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도 용납하지 않는다. 계명의 완전한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명 앞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박혜원(경남 거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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