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사양했다. 나의 삶이 나의 글과 일치하지 않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또다시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미미하지만 나의 글이 하느님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 일을 통해 나 스스로를 고발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주님 앞에 발가벗고 서서, 내 삶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은 말과 글로 점철되어 왔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고…. 말과 글을 다루는 직업. 그러나 이런 ‘글 쓰는 행위’에 대해 늘 회의하곤 한다. 나는 ‘모호한 표현’, ‘잘못 해석될 말’들을 통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을 기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저 주님 앞에서 일대일의 관계로 단순하게 살면 될 일을 속된 ‘말의 잔치’ 속에 사람들을 끌어들여 미혹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빈말을 하지 않아도 들에 핀 꽃들은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드리고, 잘 익은 사과는 그 향기로도 충분히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말이다.
관상기도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깊은 침묵 속에서 그냥 ‘아버지’만 불러도 그분의 존재감이 충만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온전히 몰입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신성이 천박하고 하찮은 말로 속되고 야한 것들과 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순수할 수 있었다.
결혼할 때 혼인서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하는지…. 인간의 약속은 믿을 것이 못된다. 나 자신은 더더구나 믿을 수 없다. 그야말로 완전하신 하느님 외에는 그 무엇도 온전하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하느님 외에는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될 뿐이다. 아, 하느님 외에는 그 무엇도 꿈꾸지 않고 말하지 않는, 온전한 그분의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박혜원(경남 거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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