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체험기] 필리핀 이주노동자 농구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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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날씨가 화창했던 지난주일. 전북 익산에서는 자그마한 행사가 열렸다. 익산과 군산 지역에 사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농구대회를 가진 것. 이번 대회는 익산의 필리핀 공동체가 발 벗고 나서 모든 것을 준비했기에 더욱 뜻 깊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와 우리 이주사목센터 식구들은 옆에서 도와주기만 했다. 그런데 내심 불안했다. “한국말도 어눌한 그들이 과연 잘 준비할 수 있을까?” “장소는 문제없이 섭외했을까?” “진행은 누가하지?” 등등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들이고, 그들의 축제다. 그냥 믿고 맡기는 수밖에.
드디어 농구대회 당일. 이번 대회에는 한국 공동체 1팀을 포함해 모두 9팀이 참가했다. 아침 9시30분에 모두 모여 공동체 미사를 봉헌하고, 곧바로 개회식이 이어졌다. 나는 속으로 ‘개회식도 하네.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오늘 농구할 사람들 모여서 파이팅 한번 외치겠지. 선수 대표들이 모여 선서도 하고 그럴까?’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 멀리서 팀별로 유니폼을 차려입고 차례로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프로 농구 선수들의 입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각 팀에는 여성 선수들도 한 명씩 포함돼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공동체 대표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베스트 유니폼’과 ‘2008년 필리핀 이주노동자 농구대회 뮤즈’를 선발해 달라고 했다. 신부님을 심사위원장으로 모시겠다는 말과 함께.
‘뮤즈’(muse)는 올해 농구대회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같은 여성을 선발하는 행사란다. 미모를 경쟁하는 자리가 아닌, 농구를 좋아하고 스포츠를 좋아하며 각 팀을 상징할 수 있는 여성을 뽑는 자리란다. 올해의 뮤즈로 뽑힌 여성은 마치 미스코리아에 선정된 것처럼, 어깨띠를 메고 수정 트로피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행사장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체육대회에 초대받아 와서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문화를 볼 수 있다니! 행운이었다.
농구대회가 시작됐다. 동네농구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웬걸 장난이 아니다. 필리핀이 농구 강국이란 말이 허풍은 아닌가 보다. 심판도 제대로 복장을 갖췄고, 점수판과 전광판도 마련됐다. 진짜 농구장을 찾아온 기분이었다.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모처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농구대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지는 석양을 보며, 문득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도 이렇게 훌륭하게 행사가 치러지는데, 괜한 근심과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능력을 믿고 마음속으로만 후원해도 충분한 것을,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야 한다는 동정심만 가득했던 내 모습이 미웠다. 이주사목을 전담하는 나도 이런데, 다른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자리를 빌어, 필리핀 공동체에 다시 한 번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늘 밝고 건강한 친구들이 가득한 필리핀 공동체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더욱 멋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 송년홍 신부 (전주교구 이주사목 전담)
-- 출처 가톨릭 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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