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연작으로, 딸을 죽인 유괴범을 찾아내 잔혹하게 살해하는 영화다.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자식을 죽인 원수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자에게 너그러울 수 없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삶의 곳곳에서 복수를 꿈꿀 때가 있는데 이 영화는 인간의 내재된 복수 심리를 고발하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무협지를 보면 온통 복수에 대한 복수로 이야기가 얼룩진다. 대를 이어 처절하게 보복하고 응징한다. 이에 비해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으로’는 오히려 자비롭다. 복수의 한계를 설정해 동일한 대가로 보복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예 그 제한된 복수마저 폐지하신다. 원한도 보복도 없는 새로운 정신을 제시하신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다.
오른쪽 뺨을 때렸을 때 다른쪽 뺨을 돌려대면 손바닥으로 치던 것을 손등으로 치게 된다. 유다인에게 손등으로 치는 것은 두 배의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분개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라고 하신다. 그 어떤 권리도 내세우지 말고 도리어 그를 도우라고 하신다. 그러나 뺨을 돌려 맞기는커녕 자존심이 상한 나의 에고(ego)는 견딜 수 없는 분노로 씩씩거리며 앙갚음을 하려 든다. 야만적인 본능은 자비를 베풀기보다는 보복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나 자신의 의지로는 예수님이 제시하신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 이는 하느님 은총으로만 실현 가능한 일이다.
명상가 스리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즈는 말한다. “죄인과 성자는 서로 자리를 교환하고 있을 따름이다. 성자는 지난날 죄인이었던 사람이고, 죄인은 장차 성자가 될 사람이다.”
우리 모두 죄를 지었고 성자 역시 죄인이었다는, 죄인으로서의 자아 인식. 예수님이 제시하는 삶의 자세는, 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죄인인데, 무엇을 변명하고 무엇을 자랑할 수 있단 말인가?
화낼 일도 없고 모욕받을 일도 없다. 내가 어둡고 추한 죄인이었을 때 하느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고 자비를 베푸셨는지 돌이켜 보면, 그 누구도 단죄하거나 응징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을 바탕으로 할 때만, 우리는 내 마음속에서 들끓는 이기심과 복수심을 극복할 수 있으며 마침내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박혜원(경남 거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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