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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본당신부와 본당수녀 - 이제민 신부
작성자최익곤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7 조회수982 추천수1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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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와 본당수녀

수도원에서 강의할 때는 항상 미묘한 감정이 인다. 본당에서 성직자와 수도자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대립 때문이다. 많은 수녀님들은 신부님들에게 불만을 느끼고 많은 신부님들은 수녀님들에게서 불편을 느낀다. 나 자신 지금까지 몇 군데 본당을 돌면서 수녀님과 늘 좋은 관계를 맺어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수녀님들 앞에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면 저절로 망설여진다.

본당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어려운 문제가 종종 발생하는 이유를 나는 ‘사목’에 대한 이해에 찾고 싶다. 이것은 동료 신부들하고 일하면서도 마찬가지이고 점점 권위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우리 한국교회를 이야기가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인용하면서 사목을 강조하지만 사목에 대한 이해가 사뭇 다르다.

본당에 처음 발령받아 부임할 때 본당 회장으로부터 처음 듣는 이야기는 대개 “신부님의 사목 방침은 무엇입니까?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따위이다. 그러니까 신부는 사목을 하고 본당 신도들은 본당신부가 사목하는 일을 도우는 것이다. 수녀님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본당수녀님의 일은 본당신부의 ‘사목’을 도우는 것이다. 사목에 대한 이런 이해를 따르면 사목은 사목의 주체인 신부가 자기 사목의 대상인 신부 아닌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목 공의회라고 불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에 대한 이런 관점을 수정하고자 했다. 신부는 사목의 주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목의 대상이며, 신자들도 본당신부의 사목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목의 주체이다. 말하자면 사목은 신부가 자기의 신자에게 봉사하는 일을 넘어 신부를 포함한 모든 신자가 온 인류에게 공동으로 봉사하는 일이다.(‘공동 사목’은 한 본당에서 여러 신부들이 집단적으로 사목하는 차원을 넘어 신부와 신부 아닌 신자들이 공동으로 인류에게 봉사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사회 사목’(농어촌 사목, 여성 사목, 교정 사목 등등)을 생각해보라. 이 사목은 신부가 아닌 신자들이 주체성을 찾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사목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본당에서 신부가 아닌 사람들은 사목방침을 가지고 오는 신부들의 기분 맞추기에 정신이 없다. 신부가 하는 일이 곧장 사목으로 이해되고 있기에 신부들의 성깔에 따라 ‘사목방침’도 다를 뿐더러(실제적으로는 사목방침이 다른 것이 아니라 본당 신부들의 사고와 삶의 양상이 다른 것이다.) 신부의 성깔과 개인적인 생활방식이 그대로 사목방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신부가 부임하자마자 성당을 이리 저리 뜯어고쳐도 그것은 신부의 사목 방침에 따른 것이니 신부가 아닌 신자들은 그것에 대해 군말을 해서는 안 되고 그 일을 도우지 않으면 신부의 사목을 방해하는 일로 취급받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함께 공동으로 본당의 사목계획을 짜는 일은 힘이 들며 설사 짠다고 해도 신부의 마음에 따라 그것은 언제든지 변동이 될 수 있다. 자연히 신부가 아닌 신자들은 신부의 눈치 보기에 바쁘고 본당 일에 수동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신자들은 신부가 시키는 범위 안에서만 일하는 데에 익숙해 있고 ‘공동 사목’은 불가능하게 된다.

사목이라는 이런 이데올로기 안에서 성직자는 자기가 아닌 다른 모든 신자들 위에 군림하게 되고, 그런 구조 안에서 본당의 수녀들도 성직자나 수녀가 아닌 다른 신자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성직자(와 수도자들)는 군대와도 같은 조직 안에서 스스로 교회가 되어 교회 위에 군림하게 된다. 군대조직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은 물론 본당 수녀들이다. 매번 바뀌는 신부들의 기분을 다 맞추어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본당에서 성직자와 수도자가 일반 신도들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원만하게 공동사목하기 위해서는 사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 실천 방안으로 그들이 일반 신자들과 함께 인내를 가지고 공동으로 사목계획을 함께 짜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될 때 그들 간의 심각한 감정의 대립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성직자와 수도자가 본당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사목이라는 개념을 옳게 정립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기회이다. 다만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공의회가 말하는 사목의 바탕에서 교회를 이해하고 성직자와 수도자의 신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다. 본당신부와 본당 수녀(그리고 신자들)의 관계는 사목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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