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고향집에는 감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잘 익은 감을 읍내 시장에 가지고 가서 소매상인에게 내다 파셨다. 상인에게는 한 접(100개)씩 넘겼기 때문에 미리 숫자를 세어야 했다. 나는 감을 셀 때마다 신이 났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 됐다.” 하실 때까지 몇 번이고 100개가 맞는지 세고 또 세었다.
어느 장날, 감을 팔러 시장에 가시는 어머니를 처음으로 따라 갔다. 어머니는 감을 소매상인에게 넘길 때마다 항상 몇 개를 더 가져가셨다. 그날도 다름없이 여유분을 가지고 가셨다. 나는 어머니가 후하셔서 소매상인에게 인정상 더 주시는 것이라 믿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의 시장주머니가 두툼해지는 것을 보면서 신이 났다. 게다가 우리 물건을 사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고 어른들이 거래하는 모습도 참 신기했다.
나는 소매상인이 어머니의 감을 셈하는 것도 유심히 지켜보았다. 내가 이미 세어놓은 것이기에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상인을 전혀 의심하지도 않았고 숫자를 헤아리는 데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 생각에 어머니는 그저 그 상인을 믿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상인은 다섯 개씩 헤아리면서 어떨 때는 큰 손으로 여섯 개를 쥐고도 다섯이라고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너무 화가 났다. 속임수라는 것을 그 상인한테서 처음 경험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어머니가 속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억울했다. 어머니는 “내가 잘못 헤아렸나?” 하시고는, 그 상인이 말하는 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여유분으로 가지고 온 것을 더 주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꽤 억울하기도 하고, 상인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에 실망해서 내가 본 사실을 그 자리에서도 나중에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어머니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속상하실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새로운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항상 여분의 농작물을 넉넉히 가지고 가시면서 속임수를 당할 때마다 그냥 말없이 채워주신다는 것을. 어머니가 사실을 알면서 그렇게 하셨는지, 아니면 정말 모르고 그렇게 하셨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일이 가끔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상인의 속임수를 보고 어린 내가 느낀 분노가 꽤 컸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어머니께서 항상 개수는 넉넉하게, 곡식 되는 넘치게 되시던 것을 보았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오늘 내가 복음을 사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따지지 않고 후하게 베풀고 그저 너그럽게 대하는 것! 그것이 ‘남을 심판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전봉순 수녀(예수성심전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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