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또 이사를 해야 하다니!’ 하고 제법 드러내 놓고 투덜거렸다. 최근 7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 했고, 같은 집 안에서 방을 옮긴 것까지 계산하면 일 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 셈이다. 이사할 때마다 20년 전 첫 본당 부임지로 가면서 가방 두 개만 들고 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수도 생활하면서 평생 간편한 짐만 가지고 온 세상에 전교하러 다니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해마다 늘어나는 짐, 그것도 내 지식욕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책이 점점 늘어나 이사할 때마다 내 마음을 짓눌렀다. 다른 수도자들보다 짐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이사를 자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힘들다.
우리는 수련소에 있을 때부터 나그네살이를 익히기 위해 매달 방을 바꾸었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여 오래 정착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매달 방을 바꿀 때마다 물건을 정리해 내 소유를 최소화시키고 친구나 가족한테서 온 편지·일기장·묵상집 등을 불태우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진 것 없는 나그네의 삶을 진하게 느끼면서 수도 정진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근래에는 공부를 한답시고 한 권씩 책을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책 부자가 되어 이사할 때마다 큰 부담이 된다. 이제는 짐을 싸는 지혜도 생겨서 책을 굳이 상자에 넣지 않고 노끈으로 묶으니 운반하기도 쉬웠다.
여러 번 책을 상자에 담아 싸고 풀고를 반복해서 이력도 생겼을 법한데, 매번 책을 싸고 푸는 일은 여전히 귀찮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얼마나 행복한 불평인가? 그렇게 이사를 여러 번 했어도 정작 집 걱정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은가? 이미 잘 마련되어 있는 집에 아무 걱정 없이 들어가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집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으며 옮겨 다닌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리도 힘들어했는가? 쉴 곳이 없어 비참한 지경에 빠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보니 나그네와 같은 수도자로 살고 싶은 나의 바람과는 달리 짐이 많은 내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다. 내게는 아무리 이사를 자주 해도 늘 감사드릴 ‘보금자리’가 있지 않은가! ●
전봉순 수녀(예수성심전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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