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sire mercy, not sacrifice.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Mt.9.13)
제1독서 아모스 8,4-6.9-12
복음 마태오 9,9-13
텔레비전을 잘 보지는 않지만,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의 광고들을 자세히 본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그 광고들이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광고에도 내용이 있으며 또 멋과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보아온 광고가 한 두 개가 아닐 텐데요. 언젠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뇌 속에 가장 인상적인 광고가 무엇이냐는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광고일까요?
1위를 차지한 광고는 라면 광고라고 합니다. 아마 기억나실 것입니다. 라면 한 그릇을 앞에 놓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외치면서 라면을 양보하던 광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1위를 차지한 광고가 글쎄 광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광고라고 하네요. 딱 한 번 연습을 하고 촬영해서 딱 1분 만에 끝났다고 합니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겼다면 광고 본연의 역할을 가장 드러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정도하려면 촬영 시간도 많고 재정적인 투자도 많을 것이라고 일반적인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사람의 마음속에 따뜻함을 던져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광고라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물질적인 공세로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아쉽게도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만을 추구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즉, 겉모습보다는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겉모습보다는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을 추구하셨습니다. 만약 겉모습을 더욱 더 강조하셨다면, 오늘 복음에 나타나듯이 세리 마태오를 당신의 제자로 뽑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분명히 제자의 자격이 없는 큰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겉모습보다는 그의 마음 안에 있는 하느님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보셨고 그래서 “나를 따라라.”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을 추구하고 있을까요? 혹시 겉모습만을 추구하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내 모습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했다면 그래서 주님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다면, 겉모습만을 보고서 판단하고 단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행복을 담는 그릇(‘행복을 전하는 우체통’ 중에서)
가진 것이 부족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김치 한 조각으로 밥을 맛있게 먹고
누더기 옷 한 벌인데도 입으면 빛이 나고
낡은 시집 한 권을 가졌을 뿐이지만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마음에서 생겨납니다.
행복을 좇는 자는 결코
행복을 잡을 수 없으며
생활에 충실하고 성실한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진 것 없이 행복해지는
방법, 그건 참 간단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
소매를 걷지 말고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속
허욕을 버린다면 그만큼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커집니다.
Yiruma - Kiss The Rain
JAY-R - Always And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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