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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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8-07-06 | 조회수898 | 추천수19 | 반대(0) 신고 |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마태오 9장 18-26절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불행 앞에서>
거듭되는 탈선과 비행으로 갈 데 까지 간 청소년의 어머니들이나 고질적인 알콜 중독자 남편을 마지못해 견뎌내고 있는 자매님들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괴롭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도 건네기 힘듭니다.
만일 제가 이런 말로 위로를 했다면 잘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매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자매님께서 겪고 계신 지금의 고통은 하느님께서 자매님에게 주신 십자가입니다. 힘들 때 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인내와 사랑으로 그저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한편으로 제대로 된 충고 같기도 하지만, 최선의 충고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그리고 이웃이 겪고 있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인간의 모순, 구조적인 악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일까요?
물론 때로 체념, 포기, 수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고통과 악과 모순을 퇴치하기 위한 적극적 대응입니다.
그 자매님께서 문제 청소년 자녀나 알콜 중독자 남편을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그들을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는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시켜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이나 기막힌 사건 앞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넋 잃고 앉아 있다가 최종적으로 하시는 말씀, “이 모든 게 다 하느님의 뜻이겠지.”
인류 역사상 가장 정직하고 소신 있었던 신학자 중에 한분이셨던 본 회퍼 목사님은 폭군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했기에 나치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산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님은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던 민중 편에 서셨기에 제단에 서신 채로 암살당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류의 고통 앞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신 분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행복을 원하시는 분이시지, 우리가 끔찍한 고통 아래 짓눌려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하느님이 고통을 통해 우리를 징벌하실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갖가지 고통 앞에 인내와 포기, 수용도 때로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더욱 필요한 자세는 적극적인 대응입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난 데 없이 다가온 고통 앞에서 우리는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고통이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고통인가, 지금 이 지옥 같은 상황이 내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인가, 지금 이 상처가 우리의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는 상처인가?’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우리 주님께서 지신 신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과 오랜 세월 혈루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한 여인을 되살려주시는 예수님의 치유활동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치유의 배경을 한번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수님 시대 당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갖은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사람은 어떻게 치유를 받았습니까?
이미 딸이 죽었지만 한번 살려보겠다는 회당장의 적극성으로 인해 딸은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건너왔습니다. 그분은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 라는 굳은 확신으로 인해 살아났습니다.
나도 병에서 말끔히 치유되어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간절한 마음, 적극적 의지가 혈루증 환자의 말끔한 치유와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480번 / 믿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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