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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는 강요할 수 없는 것/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런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10 조회수613 추천수6 반대(0) 신고



   

 

* 용서는 강요할 수 없는 것 *
 

너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 때마다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용서는 “괜찮아, 이전에 일어났던 일은 잊어버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을 억누르는 것도

책상 밑으로 밀어 넣는 것도 아닙니다.

일어난 것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처럼 축소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를 억누를 때 감정은 억압되어 이상한 방향으로 표현됩니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억누른 억압된 감정으로 인해

인류에게 해악을 끼쳤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차우세스쿠처럼

악명 높은 독재자에 관한 연구들이 이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학대받은 어린 시절과 그들의 잔혹한 독재자로서의 경력은

서로 섬짓 할 정도로 깊은 관련성을 드러냅니다.

독재자들은 어린 시절에 당했던 고통과 공포를 거부하고 억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늘 따라다니는 고통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했습니다. 


 억압하는 환경을 그대로 두었을 때

그러한 환경하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처 난 감정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치유되지 않았을 때 나중에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며

자신이 억압받은 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환경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에 부모가 어떻게 했건 상관없이

부모를 곤경 하도록 강요받고 부모가 한 것에 대해

문제시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의 억압된 감정을 그대로 놔두었을 때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 상처 난 감정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묻어 두거나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는 생각 없이 악을 방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 난 과거와

현재의 모습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학대로 인한 고통을 인정하고 직면해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 자신이 학대받았을 때 감히 느끼지 못했던 분노를

느끼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을 향한 감성적 접근”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똑바로 인식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치유의 과정이 일어날 수 있기 전에

그리고 우리가 용서하기 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용서는 “잘못 했다고 하면” 이라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계속 잘못을 반복하던지 아니면 더 큰 잘못을 허락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영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개인적인 차원이나 독단적으로 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용서는 강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런 억압된 환경이 계속되지 않는 보증을 하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아프지만 그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억압하는 위험한 순환 구조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를 억압한 환경에 대해 그 진실한 모습을 깨닫고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도 똑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용서는 무조건적인 것도 일방적인 것도 아닙니다.

“실패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희생자는 어떠한 사과, 후회 또는 배상 없이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힘든 과정이 없는 “용서”는

힘있고 책임이 주어진 사람들이 범한 억압을 일상화시킬 수 있으며

억압받은 사람은 후에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위험한 순환 구조를 띠기 때문입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수련문종원베드로신부

cafe.daum.net/mj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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