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사목하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성당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전화로만 가끔 안부를 묻곤 하셨는데 그날 제가 사목하는 곳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셨습니다. 미리 연락을 하면 혹시라도 “몸도 불편하신데 오지 마십시오.” 할까 봐 조용히 오신 듯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투병 중이셨는데도 불편한 몸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오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뵙자마자 마음과 달리 “가능하면 다음에는 오지 마십시오. 제가 집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고향 집에서 제가 사목하는 곳까지는 제주도 내에서 가장 먼 거리였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발했을 것이고, 차도 여러 번 갈아탔을 것입니다. 저는 내심 ‘아버지의 병환이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본의 아니게 섭섭하게 들리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신부님 얼굴을 보러 왔는데, 이제 보았으니 됐습니다.” 하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사제관으로 모시려 해도 굳이 사양하며 돌아서시던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먼 길을 마다 않고 힘든 몸을 이끌고 아들을 보러 오셨는데, 아들한테서 들은 첫마디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무척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는데, 아버지께서 드러나지 않게 우리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례 후 제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지우면서 제게 보여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슬픔을 가누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휴대전화에서 아버지의 전화번호는 지워질지 모르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은 기억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깨닫는 것은, 세상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위해 발걸음을 서둘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길을 재촉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그 길이 사랑을 전하는 길, 화해하러 가는 길, 위로하는 길, 용서하는 길, 용기를 주는 길, 격려하는 길이라면 다른 일을 무릅쓰고서라도 나서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길을 떠나는 제자들이 해야 할 구체적인 일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라 나서는 길은 복음의 길이고, 우리가 길에서 해야 할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그 여정 자체가 복음의 여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광주가톨릭대학교(송동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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