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7.10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호세11,1-4.8ㅁ-9 마태10,7-15
"아래부터의 영성"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떠오른 두 말마디는
‘전화위복’ 과 ‘아래로부터의 영성’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화(禍)로 보였던 일이 변하여 복(福)이 된다는
하느님의 섭리를 감지케 하는 전자의 말이고,
아래로부터의 일상 모두가 하느님 체험의 장이 된다는 후자의 말입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그 적절한 본보기입니다.
바람둥이 아내 고메르와 말썽꾸러기 아이들로 인한
마음고생이 없었더라면 결코 예언자 호세아는 없었을 것입니다.
고메르와 아이들,
오히려 호세아에게 하느님을 깊이 알게 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메르와 아이들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비우는 겸손의 수련 밑바닥에서 하느님을 만난
호세아 예언자입니다.
다음 호세아의 고백은 그대로
호세아의 하느님 체험이자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겸손의 밑바닥에서 만나는 하느님,
바로 이게 아래로부터의 영성입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라는 고백에서,
하느님을 닮아 역경을 이겨내려는 호세아의 마음가짐이 참 눈물겹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호세아는 물론 그 가족은 파멸로 끝났을 것입니다.
삶은 비움을 통한 겸손의 과정입니다.
끊임없이 안팎으로 비워 겸손해질 때
하느님과 나를 알게 되고,
바로 이게 진정한 의미의 영적 성숙이자 성장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가능한 한 안팎으로 최대한 비우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텅 빈 하느님의 권능과 평화의 통로가 될 수 있으며,
비로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삶이 일상화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이 막힘없이 흘러갈 때,
앓는 이들을 치유되고
죽은 이들은 일으켜지고
나병환자들을 깨끗해지고 마귀들은 쫓겨납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무소유의 텅 빈 통로들이 된 우리를 통해 선사되는 하느님의 평화요,
이보다 이웃에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 우리 일상의 모두가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장이자
아래로부터의 영성이 시작되는 장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비워 겸손해진 우리를
당신의 권능과 평화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주님, 주님의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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