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7.11(금)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480-547) 대축일
잠언2,1-9 콜로3,12-17 루카22,24-27
"살기위하여"
오늘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 베네딕도회 수도승으로서의 우리 신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제는 문득 깨달음처럼 스친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사는 게 일이구나.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하느님 찾으며 사는 게 일이구나.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사람마다 다 다르니 나름대로 사는 것도 다 다르겠구나.
비교할 것 없겠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흔히 수도승은 무엇을 ‘하기 위해(to do)’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to be)'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에 왔다고 합니다.
하여 수도원을 ‘하느님의 집’이라 하고
하느님을 찾는 일에 전념하는 수도승을
‘하느님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바로 하느님이 우리 삶의 의미이자 존재 이유임을 깨닫게 됩니다.
살기위하여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 바로 이게 수도승의 정의입니다.
성소를 식별하는 잣대 역시 하느님을 찾는 열정입니다.
능력이 학력이 건강이 나이가 성격이 성소의 잣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어 세상을 도피하여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좋아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에 온 수도승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이 사라지면 영성생활도 끝입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속화와 타락이 뒤따릅니다.
참으로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무언가 찾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찾는 대상에 따라 형성되는 사람의 꼴입니다.
오늘 1독서 잠언도 지혜를, 결국은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슬기를 찾아 구하고 바른 판단을 얻고 싶다고 소리쳐 불러라.
은을 찾아 헤매듯 그것을 구하고
숨은 보화를 파헤치듯 그것을 찾아라.
그래야 눈이 열려 하느님 두려운 줄 알게 되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리라.”
좋은 집을, 일을, 사람을, 돈을, 지위를, 명예를 찾을 게 아니라
지혜를,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갈림 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아야
세상의 것들로부터 초연할 수 있습니다.
마음 역시 순수해지고 단순해져 마침내 하느님을 만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하느님만을 찾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살기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일(Opus Dei)'이라 부르며
우리 수도승의 주업이기도 합니다.
개인기도보다는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인 미사와 성무일도를 뜻합니다.
하느님의 일인 기도를 하기위해
새벽 4시30분 기상하자마자 성당으로 출근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함께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우리 안에 살아있게 됩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공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우리가 끊임없이 노래로 바치는 공동시편기도,
바로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영혼의 양 날개와 같은 찬미와 감사의 공동기도가
우리를 기도의 사람, 찬미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긍정적이고 낙관적 삶을 살게 합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어 줍니다.
이런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쁨으로, 행복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살기위하여 서로 섬깁니다.
섬김의 삶을 통해 환히 들어나는 순종과 겸손의 덕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섬김의 영성'하나뿐이요,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은 우리 모두
섬김의 삶에 충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다스리려 하지 말고 겸손히 섬기라 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주님 친히 모범으로 보여주신 섬김의 삶입니다.
마침내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로 끊임없이 우리를 섬기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섬기는 우리 수도승의 삶입니다.
하여 사부 성 베네딕도도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학원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주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서로 섬기는 공동체,
진정 아름다운 복음적 수도공동체입니다.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는 공동체입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이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살기위하여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고,
섬기는 삶에 전념하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오늘 성 베네딕도 대축일을 맞이하여
다시 확인해본 우리 성 베네딕도회 수도승의 신원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
비단 수도승들뿐 아니라
영적 삶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진리의 삶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말씀과 성체로 우리를 섬기러 오시는 주님이시요,
찬미와 감사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섬김과 섬김의 만남으로
아름다운 섬김의 공동체를 선물로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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