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명, 곧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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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웅열 | 작성일2008-07-15 | 조회수85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생명, 곧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을 믿으셨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율법을 해석하셨다.
그리고 당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신다고 생각하셨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곧 오셔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바꾸실 것이라는 믿음을 마리아에게 배우셨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은 주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곁에서 그저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직접 관여하신다.”
예수님은 당시 유다 교에서 주로 논의 되는 내용을 익히 알고 계셨으며 율법을 비판적으로 연구하셨다. 율법을 존중하셨지만 율법이 사람들의 처지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율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데 유익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터가 마련된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매우 친근한 관계이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과 함께 하느님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분 가르침에 무척 놀랐다.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율사들은 올바른 용어로 정확하게 표현하지만 그 표현에는 감흥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칫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처럼 사람들에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저를 만나 주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저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내 가슴의 열망을 채워 주십니다.”
구약성경에는 영광과 좌절, 신뢰와 절망,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화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느님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릔 신부 지음-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신앙인이셨다.’ 라고 한다면 다소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이 하느님을 확고히 믿고 따랐던 사람이셨기에, 우리가 그분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 분의 모습을 우리도 따라야, 사람으로서 참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그분을 믿을 것이 아닙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볼 수도 없으며 만져 볼 수도 없으니 어떻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을 알 수 있으며, 하느님의 존재를 예수님을 통해서 알려주시고 계시고 우리는 살면서 많은 깨우침을 거치면서, 우리도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려야 하는 ‘우선순위’는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율법을 어겨가면서 사람을 살리셨다는 것은 생명이 모든 것의 최우선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생명을 뒷밭침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자존심입니다. 생명을 존중하듯이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래서 말할 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형제, 자매님들에게 삶의 용기 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로 그들을 즐겁게 하여 이 세상의 삶이 참으로 살아볼만한 삶이란 것을 깨닫게 하소서!
자선은 물질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과 밝은 마음을 이웃에 전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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