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의 복음 묵상 - 불행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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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수신 | 작성일2008-07-15 | 조회수70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태 11,20-21) +++++++++++++++++++++++++++++++++++++++++++
복음이 복음인 까닭은 어떠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지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둠으로써 행복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 들인다고 해서 쉽게 생활이 개선될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의 은총이든, 건강의 은총이든 일시적인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됨으로서 갖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 입니다.
지난 번 레지오 쁘레시디움 회계교육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강사분께서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자매님이 쁘레시디움 회계일을 정성껏 열심히 했더니 남편께서 빌딩을 사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축복 입니다. 그런데 저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한 분들도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맡은 바 직분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물질에 희망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의지대로 물질의 축복을 받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 아닙니다. 판단은 저희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희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 쓰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는 것은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니 생활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도 변하였습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다고 믿는데 어떻게 세상을 불행한 세상으로 보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멀리에서 또는 가까이에서 불행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그 분들을 위하여 잠시 화살기도라도 바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표정이 밝아 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일하다 조금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해결을 하려 노력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바라지 않았건 바랐건 (속으로 간절히 원했나 봅니다.) 건강과 물질의 축복을 가져 옵니다. 그래서 "성당다니면 복받는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해 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복신앙을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그런데 어느새 물질에 더 마음을 쓰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새로 산 집을 어떻게 처분할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침묵 가운데 하느님을 그리워 하는 시간이 짧아 집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짧아 졌습니다. 성체조배를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재를 뒤집어 쓰고 무릎꿇고 회개하여야 하는 것은 저 자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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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어떠한 처지에 빠지던지 - 주께서 주신것 다 도로 찾아가시더라도 -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 안에 머무르는 은총만은 남겨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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