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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2 조회수853 추천수13 반대(0) 신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가서 묵상

  

오래 전에 신학교를 빌려서 일일피정을 한 일이 있다.

여름 방학이라 신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기숙사도 교실도 텅 빈 교정에서, 모처럼 색다른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도 편안하고 느슨하게 짰다.

성경 하나를 들고 종일 각자 헤어져

산이고 나무 그늘이고 운동장이고 마음에 드는 곳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홀로 묵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혹 중간에 눕고 싶으면 눕고, 자고 싶으면 자도 된다고 하였다.

하여튼 자신이 알아서 자신에게 피정을 시켜주고

마지막에 조별로 모여 나눔을 갖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일행이 보이지 않는 산 중턱 소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커다란 타올까지 푹신하게 깔고 아주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을 올라올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푸른 하늘을 보며 누워있다가 가려고 마음먹었다.

 

정말 그랬다.

이런 시간이 얼마만인가?

조용한 숲 속에서 아무도 방해하는 이 없이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숲 속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하고,

날아다니는 나비나 새, 풀벌레를 조용히 바라보며,

소나무 옆에 핀 귀여운 버섯의 감촉을 느껴보는 것이.

 

문득 솔잎이 두텁게 쌓인 오솔길을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맨발에 닿는 부엽토가 푹신푹신한 솜이불 위 같고

발을 통해 온 몸의 감각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갖는 자연 속에서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바람도 알맞게 불어오고, 한참을 자유로운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여유로운 순간에, 갑자기

저 숲길로 사랑하는 사람이 느닷없이 걸어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멋진 곳에서, 그렇게 좋은 시간을 갖고 있어도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인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내 오랜 갈망을 채워줄 그이가 누구인가?

 

불현듯 아가서가 읽고 싶어졌다.

나는 아가서를 펼쳐들고 조용히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

  

아가서의 신부는 물론 나다. 신랑은 예수님.

얼굴도 모르는 내 마음 속의 '그리운 실체'에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합창단인 친구들의 노래는 풀벌레 소리, 새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혼자서 일인 삼역의 감정을 살려가며

아가서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그리고 가끔 책을 내려놓고 묵상에 잠겼다.  

 

저 존재 밑바닥의 깊고 오랜 갈망을 채워줄 사랑을 찾느라

수없이 흘려보낸 방황과 헛수고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거뭇거뭇 까실하고 볼품 없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아주는 신랑이 나타난 것이다.

 

세상에 어떤 애인과 이 같은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그분의 속삭임에 온 몸이 녹아들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파열할 듯 숨막히는 님이다.

 

그러나 그분이 정작 문을 두드리며 문 앞에 서면

'옷을 이미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으오리까?’

'발을 이미 씻었는데 어찌 다시 더럽히오리까?’(5,3) 하며

마음에도 없는 못난 소리로 거절하는 내가 된다.

 

아직도 그분 앞에서 가리울 무엇이 남았으며,

아직도 갖추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말이냐?

 

머뭇거리고 꾸물거리는 사이 그분을 놓쳐버리고

그제야 밤새워 이 거리 저 장터를 돌아다니며 찾아 헤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나의 모습도 아가서에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어느새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넘쳤다.

 

 그래, 이제는 그만 찾아다녀야 한다.

이제는 그만 헤매야 한다.

 

.................................

 

오늘 복음에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울기만 했다.

바로 뒤에 그분이 서 계시는 데도 그분을 찾고 있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면서도 그분인 줄 몰랐다.

 

눈물이 범벅이 되면 그분이 곁에 계셔도 알아볼 수가 없다.

 

"마리아야!" 

"라뽀니!" 

 

 

"마리아 자매님."

"막달라 여자여." 

남들도 부르는 그런 호칭이 아니다.

 

"주님."

"선생님."  

모든 사람들이 부르던 그런 호칭이 아니다. 

'라뿌니’는 마리아가 평소 그분을 불렀던 애정어린 호칭, "나의 선생님"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인격적인 만남의 증거다.  

서로의 애칭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남모를 친밀함의 표지다.

 

친밀함만이 서로의 애칭을 거침없이 부를 수 있다.

사랑만이 자기 님을 알아본다.

 

 

 ..............................................

 

이제 나도 눈물을 거두고 방황을 끝내고

내 곁에 서 있는 분을 돌아다 본다.

 

아가서에서 나를 부르는 그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가만히 귀 기울여 님의 노크 소리를 듣는다.

"내게 문을 열어주오. 나의 누이, 나의 애인, 나의 비둘기."

 

이번에는 망설이지도 꾸물대지도 않고 문을 열리라.

그분의 머리를 이슬로, 밤이슬로 흠뻑 젖게 하지 않으리라.

이 핑계 저 이유를 대면서 그냥 보내지 않으리라.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

"죽음처럼 강한 사랑(8,5)으로 이 밤을 불밝혀요. "

 

 

...........................................

 

신학교 숲속에서 아가서에 흠뻑 젖어서 보낸 하루 피정,

아가서의 표현대로 세상 누구와도 "견줄데 없는 애인"(6,8)과  

"들에서 사랑을"(7,12)을 나눈 다시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감미로운 시간을 또다시 느껴보고 싶어.

이번 휴가 기간엔 숲 속으로 성경을 들고 나가도 좋을 것 같다. )

 

 

 

 

 
Celine Dion - Because You Love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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