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 26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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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8-07-26 | 조회수569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7월 26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마태오 13장 24-30절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키 큰 나무 사이를 걷노라니>
고민 많은 한 아이와 산을 올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랑비가 내리는 산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쭉쭉 뻗은 ‘팔등신 미인’ 나무-메타세쿼이아-들을 만났습니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걷노라니 세파에 허물리고 휘어졌던 마음이 다시 서는 느낌이었습니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저 나무들, 저토록 높이높이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견뎌왔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왔습니다.
오늘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크신 자비, 엄청난 인내심을 잘 표현하는 복음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순간순간 마다 하느님께서 진노하시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단죄하시고, 인간의 기를 꺾어놓는다면,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하느님의 심판 앞에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우리가 어떠하든 그저 묵묵히 참으십니다. 한없이 기다리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무력해 보이는 하느님이십니다. 때로 너무나 나약해 보이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동의 극점에 서 계신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도 참아내시는 분, 우리의 악행을 끝까지 견뎌내시는 분, 우리의 불효를 끝끝내 인내하시는 분, 끝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이토록 ‘인내의 달인’이신 하느님에 비교하면 우리네 인간들, 얼마나 조급한지 모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시나마 탈출의 기쁨에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계속되는 황폐한 사막, 갈증, 지루함만이 그들의 나날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어봐야 한, 두 달, 늦어도 서너 달이면 약속의 땅에 도착하겠지’ 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장장 40년이란 긴 세월을 사막 한 가운데서 흙먼지를 마셔가며 긴 고통과 오랜 기다림 속에 보냈습니다.
여행의 끝이 보이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고조되어갔고, 모세를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의 초조함은 커져만 갔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공동체적 여정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확연히 드러나는 현상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각 개인 안에 잠재되어있던 극단적 이기주의, 동물적 본능, 공격성, 미성숙이 아무런 여과 없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불평불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종살이를 하더라도 차라리 거기 이집트에 남아있을 걸!”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구원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사막을 횡단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갈증과 지루함, 포기하고픈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왕 내딛은 걸음 ‘그래도 간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는 일입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도 무한한 인내와 자비심으로 약속의 땅 저 건너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좀 늦게 가는 것, 창피한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막의 낙타는 천천히 가기 때문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든 과정이 있는 법이고, 그 과정을 묵묵히 견뎌낸 사람만이 결국 값진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4번 /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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