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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찬미와 감사의 삶" - 8.3,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04 조회수515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8.3 연중 제18주일                                            
이사55,1-3 로마8,35.37-39 마태14,13-21


                                                          
 
"찬미와 감사의 삶"


모든 만물이 주님을 찬미합니다.
 
계속되는 장마철, 아침 산책
중 어둠을 환히 밝히고 있는 연분홍 청초하게 피어난
메꽃들의 인사가 참 반가웠습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주님께 감사합시다.”

침묵 중에 저에게 들린 꽃들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우리 수도자들도 오늘 아침 활짝 피어난 마음으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매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행복은 선택입니다.
환경이 좋아 행복하기로 하면 결코 그런 환경은 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의 삶이 우리를 행복에로 이끕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려면 끝이 없고 하느님께 감사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관상생활의 핵심 역시 찬미와 감사입니다.

찬미와 감사가 하느님의 현존에 늘 깨어있게 하고
하느님을 향해 우리를 부단히 업그레이드 시킵니다.
 
내적변화에 내적성숙으로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마음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만듭니다.
 
저절로 부정적 비관적 삶은 긍정적 낙관적 삶으로 변모 됩니다.
 
주님은 오늘 고맙게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찬미와 감사의 생명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 양식인 하느님에 굶주려 있는지요.
보이는 의식주만으론 채워줄 수 없는 영혼의 목마름, 배고픔입니다.
 
여전히 먹고 마셔도 영혼의 배고픔은, 목마름은 여전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식도 못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는지요.
 
결국은 코헬렛처럼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로
귀결될 수뿐이 없는 인생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참 양식입니다.
주님의 성체가 참 양식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을 먹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말씀을 들어야,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말씀을 먹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옛 수도자들은 단식으로 배고플 때 말씀으로 배불렸습니다.
 
말씀 따라 살 때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 믿어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와서 돈 없이 값없이 말씀의 술과 성체의 젖을 먹음으로
영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말끔히 해소되는 미사시간입니다.
 
하여 저절로 마음 깊이에서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아니곤
영혼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쁨으로,
행복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예수님 역시 찬미와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위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아래로는 군중들에게 연민 가득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이 찬미와 감사의 마음이, 연민의 마음이
하느님을 감동시켰고 사람들을 감동시킴으로 일어난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다음 두 구절의 묘사가 이를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가엾이 여기는 측은지심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요,
이 마음 있어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의 민중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에,
지극 정성의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마음에,
하느님의 감동에 이은 민중들의 감동입니다.
 
하여 군중은 각자 숨겨두고 있던 비상식량을 모두 내놓아 나눔으로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 게 아니라
나누지 않아 굶주림이니 이건 하느님의 책임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들 책임입니다.
 
북한의 굶주리고 있는 주민들,
이유여하 불문하고 무조건 먹을 것을 나누어 살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성체성사의 장면 같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신 주님이십니다.
 
시나이 광야 여정 중의 백성들에게는 만나로 배불리시고
예수님 시대에는 외딴 곳 광야에서 빵으로 배불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어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과 성체로 광야여정 중의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배불리시는 주님이십니다.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주님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에 대한 당연한 응답이 주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저절로 주님과 깊어가는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저절로 이 미사를 통해 바오로처럼
확신에 넘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
백절불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이 주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으며,
떼어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사랑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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