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어린이 빼고 남자만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그 자리에 모여든 모든 사람을 흥분시키고도 남았습니다. 특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기적을 보고 그분이 특별한 분이심을 직감했을 것이고, 자칫 분위기에 휩쓸려 들뜬 군중과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저질렀을 법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예수님은 서둘러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떠나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22절) 예수님은 배불리 잘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무모하게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 군중의 가벼운 심리를 잘 파악하셨습니다. 위험한 유혹입니다. 백성들한테는 먹고 즐기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의 유혹이, 예수님께는 양식만 대주는 메시아로 전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두르고 재촉하십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23절) 군중을 다 보내시고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홀로 기도하십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워야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은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요? 방금 떠나간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제자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일이 예수님께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기에 권력을 잡으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셨을 겁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포기하려는 유혹을 극복하고 온 인류가 자유와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시면서, 앞으로 남은 여정을 아버지께 온전히 맡기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 제자들은 바다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으로 예수님 없이 그들만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먼저 가 있게 하신 곳은 겐네사렛 호수 ‘건너편’으로(22절) 이방인의 땅입니다.
늦은 시간에 보호자도 없이 가게 된 곳이 하필 낯선 곳입니다. 이 짧은 구절은 배불리 먹었던 풍성한 잔치를 다른 민족과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함을, 그들 역시 당신 공동체에 속함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습니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24절) 다른 고장에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이 순탄치 않을 듯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25절) 물 위를 걷는 일은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9,8)이라고. 죽음을 상징하는 물 위를 걷는 것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가리키며, 죽음을 극복하는 일은 부활하신 예수님 고유의 것입니다.
파도에 시달리던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혼비백산합니다. 하느님 체험이 늘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두려울 정도로 놀랍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제자들의 운명은 바뀝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27ㄴ절)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다가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시고 안전하게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분이십니다. 신뢰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자 가장 먼저 용기를 냅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28ㄴ절)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29절) 배를 타야만 물을 건널 수 있다는 자신이 만든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볼 땐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30ㄱ절) 거센 바람을 본 베드로는 곧바로 물에 빠져듭니다. 하느님께 시선을 집중하는 것만이 불안한 현실과 위기에서 우리를 구하는 길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30ㄴ절) 베드로의 기도는 신심 깊은 유다인들의 기도와 닮았습니다.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시편 69,2)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십니다(31절).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31절) 그분을 믿기는 하지만 믿음의 정도가 약합니다.
약한 믿음으로는 역풍에 견딜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계획에 대한 전적인 신뢰,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즉시 그쳤습니다.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32절) 예수님이 배 안에 계실 때 주변의 소용돌이는 잠잠해지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 바람은 멎고 불안은 사라지며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삶의 한밤중, 폭풍우의 한복판에 서더라도, 불안정한 상황 한가운데서도 평화를 체험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목격한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3절) 제자들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요동치는 세상이라는 파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물러간 뒤엔 하느님의 아드님을 알아보고 고백하는 참용기가 생깁니다.
소란스럽고 복잡다단한 삶에서 중심을 잡고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한 번씩 몰아치는 폭풍우 앞에서는 더더욱 속수무책입니다. 두렵고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두터운 신뢰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거센 바람에 맞설 용기를 줍니다.
바다도 믿음 강한 이를 떠받칠 정도이니 물속에 빠질 리가 없습니다. 물 위를 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몰두합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우리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배에 타셨습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