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기도의 선물을 내려주심으로써
그들의 손에 막강한 힘을 쥐어 주셨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한,
우리가 주님께 청원하는 바대로 역사하실 것을 분명히 약속하셨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라!" 라고 호소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한 사명과 동시에 하나의 약속을 우리 손에 쥐어주셨다. 우
리는 주님께 청원할 수 있고 주님께서는 이를 들어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렇다. "기도는 이 세상의 가장 큰 힘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의 손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특별한 가능성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 가뭄, 곤궁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도는 무한한 능력이다.
그 때문에 사탄은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한다.
사탄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많은 일을 이룬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한다면, 그의 나라에 들어가 그에게서 전리품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도 사탄은 알고 있다.
저울을 그렸던 어느 화가의 그림은 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마귀 다섯이 앉아 있고,
다른 쪽 접시에는 기도하는 아이가 앉아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앉아 있는 접시가 더욱 무거워 결국 아래로 더 내려간다.
바로 이러한 힘은 올바르게 기도하는 데에 있다.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고 마지막 순간까지 일로 가득 차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기도해야 하는 특별한 동기가 아닐까?
우리가 너무 많은 일로 인해 쫓기고 참을성 없이 속상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만이 우리가 일로 인해 지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모든 것이 달려 있는 하느님의 축복을
우리의 일을 위해 청하기 때문이다.
"낫을 간다고 해서 풀베기를 중단하지 않듯이
기도한다고 일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구원, 영원한 사업이 문제인 곳에 정말 이러한 "낫 갈기",
즉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지 않을 까?
우리의 기도 생활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일, 생활의 열매, 수확도 그러하며,
우리의 곤경과 시련에서의 승리도 그러하다.
예수님을 부르는 곳,
즉 무덤에서 승승장구 일어나시어 적을 자신의 두 발 아래 쓰러뜨린 분,
부활하신 분인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찬미하는 곳에서는
죄악의 권세가 언제나 무너진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하면, 하느님을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살아 계시는 분으로 체험할 수 있다.
즉 그분의 전능하심과 힘은 곤경과 난관을 해결하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위로해주고 치유시켜 주신다.
우리의 하느님은 어떤 주님이시며 어떤 구원자이신가!
어떤 화해자이시며 어떤 구세주이신가!
어떤 승리자이시며, 어떤 왕이신가! 그러니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기도하면서, 그분의 본질에 대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면,
하늘과 땅은 그러한 주님에 대해 결코 끝나지 않는 찬양으로 메아리 칠텐데!
우리가 이곳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겠는가?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 나타나는 것,
즉 모든 왕 가운데 왕이신 그분을 알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정결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하느님 앞에 설 수 있으며,
우리가 기도하면서 어떻게 우리들의 뜻을 하느님께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무엇인가를 청원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기도의 생활로 부름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생활을
변화하도록 부름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빛,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하느님의 진리 앞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즉, 하느님은 우리의 생활을 기도로 변화시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관상하는 생활, 승리의 생활로 이끌고자 하신다.
하느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어
의미있는 생활로 가득 채우시고 풍성하게 하시고자 할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축복을 받도록 하고자 하신다.
- 마리아 1998년 87호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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