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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 신부의 혼례예복 [“아빠! 아버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0 조회수504 추천수2 반대(0) 신고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가기를 거부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참석하지 않는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부유한 자'들이다) 모두가 핑계다. 실망한 임금은 다른 이들을 데려온다. 하느님의 초대가 만인에게 내려진 것이다. (세상 내면의 '가난한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하여진다) 그렇지만 예복을 갖추어야 했다. 주님 앞에 겸손한 자세다. 믿음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다. (주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의 순수함이 복되다) .... < 목요일 복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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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의 타락상()만을 보고서는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많이 의심한다. 거기에서 그리스도 복음의 또 다른 해석이 시도된다. 신앙의 출발이 근본에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구속자의 유일성이 파괴되고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을 앞세우고 오면 영혼은 기꺼이 그 사람을 맞이한다. 인간의 죄때문에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모시지 못한다는 인간 자기 인식(영지)의 차원에서 결정내린 것이다.
 
이는 세상 안에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소피아의 자녀'(그노시스파)들이다고 볼 수 있게 되며 주님의 은총(그리스도의 십자가)을 자기 영지적인 인식보다도 낮게 보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긴 탓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 자신의 힘(영지적인 소피아, 영지적인 실천)에 의해 오직 좌우되는 것으로 믿는다. 성부의 자비에 근원을 두고 있지 않고 '자신 내면의 영적인 인식'에 구원의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순수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 자신 내면의 영적인 초월성(신성, 뉴에이지)을 우선하는 교만에서 제 자신이 영혼의 구원을 일구어 낸다. 하느님과 인간의 구별이 아닌 하느님과 인간의 단일한 전체성이다.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온갖 세상 지식은 자기 정신의 작용에서 통합되어 바뀐다. 자기 안에는 그리스도 보다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는 연유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여 그를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요한복음서 5, 43)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요한복음서 5, 42)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아드님을 진실로 사랑한다. (요한복음서 8, 42 참조)
 
세상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드님을 참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세상이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 17, 25 참조)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하느님의 말씀)이 다르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 16, 9 참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죄가 그대로 영원히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며 혼례예복 (그리스도의 옷) 입지 않는 영혼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마태오복음서 11, 25 - 26)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불사불멸)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아드님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알 수 있게 된 사람이다고 하더라도 아드님을 모르는 사람(모시지 않는 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복음서 17, 3 참조) 영혼이 아버지의 선(자비)하신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혼례예복을 입지 않고 세상에서 주는 '다른 사람의 옷'을 걸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주는 지혜(영지)는 영혼을 썩게 할 수도 있다. 순수한 믿음이란 영혼의 순결함과 같다. 그리스도의 순결함은 오로지 아버지께 대한 당신 사랑의 순종이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영지(靈知)라 일컫는 그노시스는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 많은 논쟁과 이론(異論)이 생기게 되었고, 또 온갖 가정과 추리가 속출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주는 이렇듯 다른 옷들을 입는 영혼은 결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드님에 관한 믿음이 죽어있는 까닭에 '그리스도(아드님)의 영'(성령)이 그 영혼을 사로잡지 못하여 아버지(하느님의 마음)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서 8, 9)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죄의 힘, 죄의 권세) 받은 것이 아니라(현대의 그노시스주의),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아드님의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8, 15 )
 
 
성령과 신부 ( =그리스도의 신부 )는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요한묵시록 22, 1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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