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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 159 - 163항)
작성자장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2 조회수500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 신심은 안전한 길이다

  

159.

마리아께 대한 이 신심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완전함을 획득하기 위한 안전한 길이다.


1. 이 신심은 안전한 길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르치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덕의 향기를 풍기며 얼마 전에 선종한 부동(Boudon)신부가

이 신심에 관해 썼던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이 신심은 너무나 오래 되어서

이것이 시작되었던 때를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흔적에 의하면 이 신심의 기원은 700년 이상되었음이 확실하다.

 


1040년경에 생존했던 클뤼니 수도회 원장 성 오딜롱(Odilon)의 전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는 프랑스에서 이 신심을 공적으로 실천했던 최초의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베드로 다미아노 추기경(1828년에 레오 12세 교황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됨)은

그의 형인 복자 마리노(Marinoi)가 1016년에 매우 교훈적인 태도로 자신의 지도자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복되신 동정녀의 노예로 드렸다고 말한다. 

그는 목에 밧줄을 매고 채찍을 들고서 마리아께 자신을 바치고 봉헌한다는 표지로

약간의 돈을 제대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는 이 봉헌을 자신의 일생에 걸쳐 너무나도 충실하게 지속하였으며 마침내

죽을 때에는 그의 '좋으신 여주인'의 방문과 위로를 받았고 그의 봉사에 대한 상급으로

천국에 대한 약속을 그 '착한 여주인'의 입을 통해 받기까지 하였다.


체사리우스 볼란두스(Caesarius Bollandus)는 루뱅의 어느 공작의 친척인

유명한 기사 보티에르 드 비르박(Vautier de Birbac)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비르박은 이미 약 1300년경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자기 자신을 봉헌했다.


이 신심은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각 개인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 때 이 신심은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


160.

'포로들의 구원을 위한 수도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동시에 필립 3세 왕의

 설교자였던 삼위일체 수도회의 시몬 데로야스 신부는 스페인과 독일에

이 신심을 널리 보급시켰으며 필립 3세의 요청에 의해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으로부터

이 신심을 실천하는 자들을 위한 대사를 얻어내었다.


아우구스티노회의 로스 리오스 신부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시몬 데 로야스 신부와

함께 설교와 저술활동을 통해 스페인과 독일 전역에 걸쳐 이 신심을 널리 보급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는 '마리아의 교계 제도'라고 불리는 두꺼운 책을 썼는데 거기서

그는 이 신심이 오래 되고 훌륭하며 견실하다는 점을 대단히 경건하게 다루고 있다.

 


161. 

17세기에 들어 테아틴(Theatine)회의 신부들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와 사보이에서

이 신심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예수회의 스타니슬라우스 팔라치우스 신부는 폴란드에서 보다 더 훌륭하게

이 신심을 발전시켰다.


위에서 언급한 로스 리오스(Los Rios)신부는 이 신심을 받아들였던 여러 다른 왕국들의

왕들과 왕후들, 주교들과 추기경들의 이름을 제시하고 있다.


깊은 학문에 있어서나 신앙심에 있어 한결같이 존경받을 만한

코르넬리우스 아 라피데(Cornelius a` Lapide)신부는 여러 주교들과 신학자들에게서

이 신심에 대한 연구를 위임받아 충분히 연구한 결과, 깊은 신앙심으로 이 신심을

찬양했으며 다른 많은 저명인사들도 그의 모범을 따랐다.


성모님을 위한 봉사에 언제나 열성적인 예수회 사제들도 쾰른 신심회의 이름으로

당시 쾰른의 대주교였던 바이에른의 페르디난트 공작에게 이 신심에 관한 소책자를

쾰른의 예수회 회원들의 이름으로 기증했다.


페르디난트 주교는 그것을 인준하여 인쇄 허락을 주었고 할 수 있는 한 이 참다운

신심을 널리 보급하도록 자신의 교구내의 모든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권고했다.

 


162. 

모든 프랑스 사람들의 추억에 남아있는 베륄 추기경은 악평가들과

자유 신앙주의자들의 비방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전역에 걸쳐 이 신심을

열렬하게 전파하였다.  반대자들은 이 신심을 사교나 새로운 종교라고 그를

미신자나 혁신파로 비난하고 중상하는 글을 써서 내붙이는 등 마치 악마처럼

그가 프랑스에서 이 마리아 신심을 보급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갖은 책략을 다하였다.


그러나 살아 있는 성인이었던 그는 오직 인내와 짤막한 글로써만 그들의 비방을

반박했을 뿐이었는데, 이 글은 반대자들의 의문을 신랄하게 반박하고 있다. 

즉 이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세례때에

행한 서약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마리아께 대한 봉헌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이 봉헌은 바로 세례 서약과 그 약속의 완전한

갱신임을 강조함으로써 반대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그는 확실히 이 신심에 대해서

좋고 아름다운 점을 많이 알고 있었다.

 


163. 

앞서 말한 신학자 부동 신부의 저서에서는 이 신심을 찬성한 교황들과 이 신심을

분석하고 실천한 신학자들을 볼 수 있고 또한 이 봉헌의 신심이 극복한 온갖 박해와

이 신심을 옹호하며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도 볼 수 있으며 일찍이 단 한 분의 교황도

 이 신심을 거부한 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이 신심을 가톨릭 교회의

기초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신심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신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지 않음은

이 신심이 너무나 귀중한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신심의 정당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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