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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삶, 곧 부활의 삶을 이 세상에서도 살자!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4 조회수478 추천수4 반대(0) 신고
 

새로운 삶, 곧 부활의 삶을 이 세상에서도 살자!

(살아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모든 철학의 근원적 질문에 독특하게

대답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11, 25-26)


예수께서 부활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죽음에서 깨어나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간다는 말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살아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죽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실제로 사는 게 아니라 그저 껍데기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또 예수님이 정말 누구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안과 자기연민의 무덤에서 떨쳐

일어나, 경직과 압박과 암울과 나약에서 헤어날 수 있다.


그에게는 부활이 일상에서 일어난다. 그는 좁은 곳에서 드넓은

곳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경직에서 생동으로 떨쳐 일어선다.


예수께서 무덤에 묻힌 지 사흘이나 되는 라자로를 살리신

이야기(요한 11, 38-44참조)를 예로 들어보자.

라자로의 손과 발은 띠로 묶여 있고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다.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고, 시신에서는 벌써 썩은 냄새가 났다.


무덤을 막은 돌은 관계 단절을 의미하고, 돌 저편에 누운 사람은

삶에서 소외된 사람을 뜻한다. 모든 것이 부패해서 악취가 났다.


얼굴을 덮은 수건은 그저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면목은 죽었다.

손발이 묶여 자유롭지 못했다. 잠에서 깨운다는 말은 예수님 사랑의

말씀이 돌을 뚫고 그 친구에게 가 닿는다는 뜻이다.


사랑의 말씀이 친구의 생명을 되살렸다. 그 말씀은 동여매인

시신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가면을

벗겼다.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사랑은 모든 돌을 꿰뚫고 모든 경직을

풀어준다. 육신은 죽지만 진정한 자아는 죽지 않는다. 믿음의 힘은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에까지 뻗친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경직에서 생기로, 관계 단절에서 사랑으로 건너간다.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 소설 ‘죄와 벌’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해서 살 용기가 생기고,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살 용기가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부활이고, “나는 부활입니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을 들여다보십시오. 언제 진정한 삶을 살고, 언제 공허하며

언제 지리 한 일상의 반복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삶을 가치 있게 합니까?


여러분은 살면서 언제 부활을 체험했습니까? 여러분은 경직된 생활에서

벗어나는 삶의 활기를 어디에서 얻습니까?


여러분이 불안과 체념의 무덤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언제 여러분은 관계 단절을 청산하고 부활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부활이 이루어지면 예수님은 여러분 마음속에 계시고,

여러분 마음속에서 부활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우리는 부활을 새롭게 이해해야 합니다.

부활의 삶은 반드시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오늘의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라자로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사랑의 말씀으로

우리가 일상의 생활에서 부활의 삶을 누려야한다는 것입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라자로의 손과 발은 띠로 묶여 있고,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다.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고, 시신에서는 벌써 썩은 냄새가 났다.

무덤을 막은 돌은 관계 단절을 의미하고, 돌 저편에 누운 사람은

삶에서 소외된 사람을 뜻한다. 모든 것이 부패해서 악취가 났다.

얼굴을 덮은 수건은 그저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면목은 죽었다.

손발이 묶여 자유롭지 못했다.” (본문 중에서. . . )


오늘 날 이기주의와 재물 그리고 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라자로의 부활, 예수님은 라자로를 살리십니다.

“잠에서 깨운다는 말은,

예수님 사랑의 말씀이 돌을 뚫고 그 친구에게 가 닿는다는 뜻이다.

사랑의 말씀이 친구의 생명을 되살렸다. 그 말씀은 동여매인 시신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가면을 벗겼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사랑은 모든 돌을 꿰뚫고 모든 경직을 풀어준다.

육신은 죽지만 진정한 자아는 죽지 않는다.

믿음의 힘은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에까지 뻗친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경직에서 생기로,

관계 단절에서 사랑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라자로의 죽음과 부활을 비유로 들려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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