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월 6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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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8-09-06 | 조회수568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9월 6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루카 6,1-5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해질녘 강가, 과수원에서>
어린 시절, 주말만 되면 저는 ‘고기잡이 전문가’였던 형을 따라 강으로 계곡으로 따라다녔습니다. 저도 슬슬 재미를 붙여 해지는 줄 모르고 고기를 잡았습니다.
고기를 잡는 방법도 다양했지요. 낚싯대로 잘 안 잡히면, 커다란 해머로 물에 잠긴 바위를 내리칩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바위 밑에 숨어있던 고기들이 기절을 해서 떠오르지요. 어떤 날, 저는 하루 온 종일 형과 같이 타고 간 자전거의 페달만 열심히 돌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형은 페달을 돌릴 때 생기는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서 고기를 ‘감전’시켜서 잡았습니다. 또 형은 손으로 고기를 잡기도 했는데, 정말 귀신같았습니다.
그렇게 잡은 고기는 날걸로 먹기도 하고, 튀겨먹기도 하고, 매운탕도 끓여먹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해가 넘어가곤 했습니다.
강가에는 큰 과수원이 하나 있었는데, 늦여름 쯤 되면 사과의 크기도 크기지만, 그 빛깔이 너무 고왔습니다. 낮에는 괜찮았는데, 해만 떨어지면 그리도 유혹이 커졌습니다. 때로 유혹을 참지 못해 과수원 담을 타고 넘어갔습니다. 크고 잘 익은 것은 미안해서 손을 못 대고, 떨어진 것들 몇 개씩 주워서 나오곤 했습니다.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는 말, 누가 했는지 정말 정답이었습니다.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씩 주인아저씨에게 들켜서 밤늦게까지 벌도 서고, 거름도 옮기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우리 시골 전통 안에 ‘서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젊은이들이 혈기를 한번 부려보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관대한 마음으로 눈감아주는 좀 특별한 전통이지요.
대표적인 것이 ‘닭서리’ ‘수박서리’ 인데, 아직도 그 기억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했었지요. 요즘같이 ‘차 때기로’, ‘무자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해하면서, 닭 한두 마리, 혹은 수박 한 두통, 그 정도였습니다. 어르신들도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허허’ 하고 슬쩍 눈감아주셨지요.
요즘같이 경찰에 고소한다든지, 법정에까지 간다든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리란 것은 적정선의 ‘장난끼’가 발동되는 것이었습니다. 심각하게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호기부리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가다 보니, 제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장난기가 발동되었습니다. 아니면 어린 시절 밀 이삭을 잘라먹던 추억이 떠올랐겠지요. 자연스럽게 밀 이삭 몇 가닥을 뜯었습니다. 비벼먹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웃으면서 따라했겠지요. 장난으로 그랬지, 그것을 ‘노동’한다면서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말합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지금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정을 깨트리고 있습니다.”
기가 치지도 않았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래 의미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안식일을 정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신체구조, 신체리듬 상, 한 엿새 일하고 나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칩니다.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만 갑니다. 그런 상태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되면 일의 능력도 떨어집니다. 그 정도 되면 일이 기쁨이요 보람이 아니라 인간을 힘들게 하는,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괴로움의 원천이 됩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노동은 삶의 큰 보람입니다. 노동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안식일(혹은 주일)이라도 먹어야 합니다. 안식일이면 오히려 재미있게 지내야지요. 안식일 날 꼼짝 없이 집 안에서만 지내기보다는 산으로 들로 나가 맑은 공기를 쐬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겠습니다.
안식일 규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송장처럼 꼼짝없이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웃기는 일입니다. 당시 안식일 규정은 해도 해도 너무했습니다. 때로 너무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규정이어서,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는 규정이어서 배를 쥐고 웃을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안식일의 세부 규정 때문에 안식일이 오히려 더 괴롭고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는 1,392미터 이상 걸으면 안식일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밀 이삭을 한 개 자르는 것 역시 큰 위반이었습니다. 꽃 한 송이 꺾는 것도 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열매에 손대는 것조차도 위반이었습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것도 위반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쫀쫀하게’ 된 바리사이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되찾아주고 싶으셨습니다. 안식일의 핵심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8번 / 주님을 부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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