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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먹보요 술꾼이라 불리신 예수님.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7 조회수599 추천수3 반대(0) 신고
 

먹보요 술꾼이라 불리신 예수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후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과

당신을 비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라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하고

말한다.”(마태 11,18-19)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행동이 모두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귀신들렸다고 비난하면서

멀리했다.  귀신들리지 않고서는 그렇게 엄격한 금욕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께서 금욕생활을 하지 않고 보통 사람과 같이 음식을

드시고 술을 드시자 이번에는 먹보요 술꾼이라고 욕을 했다.

예수님의 행동이 너무 방만하다는 비난이었다.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은 예언자가 아니라고 단정한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자신들의 감추어진 어두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무의식적인 의도를 밝혀내시며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애로우시고 죄인들마저도 불쌍히 여기신다고 가르치셨다.

또 누구든 함께 식사하셨는데 바리사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멸시를 받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예수님의 모습은

당시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새로운 일이었다.


예수님은 직업이나 생활방식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셨다. 물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먼저

회개하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극단적인 고행으로 영성을 입증하시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문제를 자유롭게 판단하셨고 단식을 거부하시지 않았다. 단식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취급받는 사람들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실 때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자유롭게 행동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바로 하느님의 신비를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분은 음식이나 술에 중독될까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만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분은 경건한 사람들이나 당시 사회 권력층의 인정과 비호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으셨다.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옳다고 생각

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었다.


여러분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생각해 보세요!

정말 먹고 마시는 것을 즐깁니까? 아니면 그냥 뭐든지 닥치는 대로 먹습니까?

여러분은 화가 났을 때, 체념했을 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났을 때 마시는 것으로

풀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이라도 의식적으로 천천히 식사하면서 맛을 음미하고 하느님의

자애로움과 사람들의 호의를 느껴 보세요.

여러분의 잣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동안 억눌려 있던 욕구와 바람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신비, 하느님의 기적,

그리고 이에 응답하는 우리들의 감사와 찬미는 참으로 절묘한 응답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러한 기적과 신비와 섭리에 의해서 생각하고 움직이며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며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여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의식적으로 천천히 식사하며 맛을 음미하고

하느님의 자애로움과 사람들의 호의를 느껴보세요.”


음식을 먹는 데에도 참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배가 곱아서 허겁지겁 배를, 아니 창자를 채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때는  그냥 정신없이 배를 채우는 기쁨과 욕구의 충족이라는 포만감은 있겠으나

여러 가지 음식의 맛에서 풍기는 여러 가지의 독특한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많은 설교와 풍성한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치려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훈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번 실험해보십시오.

천천히 곱씹으면서 10번, 20번, 30번 까지 천천히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해보십시오.


그 어떤 음식을 먹던 ‘참으로 맛있다!’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나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음식투정을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본래 어려서부터

조부님과 밥상을 같이하면서 천천히 먹는 습관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음식의

절묘한 맛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을 읽던 그 글속에는 쓰는 사람의 의도가 있게 마련이며

우리는 그 의도를 파악할 때까지 천천히 읽으면서 글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글의 내용을 음미해야 비로소 그 진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음식에도 여러 가지 음식이 있듯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마다 풍기는 모습이 다 다릅니다.

각각의 모습에는 다 독특한 멋을 풍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쓸모없는

것을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음식의 맛을 알듯이 사람마다

풍기는 그 사람만의 멋을 알게 된다면 ‘그 얼마나 멋집니까!’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오늘 저희들이 먹게 되는 음식의 맛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들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독특한 멋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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