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나이 든 분들은 ‘무짠지’의 매력을 알 것이다. 여름철 더위에 지치면 평상시 맛있게 먹었던 갖은 양념의 반찬이 싫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소금에만 절인 무짠지를 물에 담가 적당히 간을 우려내어 먹으면 그 맛이 개운해서 입맛을 되찾게 된다. 생무는 싱싱한 맛을 내지만 썰어놓으면 부러질 수 있다. 반면에 소금에 절인 무는 성질이 완전히 변해 손으로 비틀어도 부러지지 않고 깊은 맛을 낸다. 생무는 ‘사람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본성적인 사람이고, 무짠지는 사람 맛이 다 빠져나가고 ‘하느님 맛’으로 변한 ‘하느님의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생무가 짠지가 되려면 긴 시간 장독 속에서 지독히도 짠 소금물에 잠겨 있어야 한다. 더욱이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무거운 돌에 꼼짝없이 눌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무 맛이 쏙 빠져나가 변질되지 않는 짠지 맛으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
이기심과 욕심, 교만이 그대로 살아 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나’를 찾게 된다. 내 본성이 살아 있는 한 부러질 수밖에 없다. 내 안의 이런 ‘사람 맛’을 빼기 위해 하느님은 나의 삶에 이른바 ‘원수’들을 보내주시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사람, 뺨을 때리고 내 것을 가져가는 사람…. 그러나 이들이 나를 가장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하느님의 사신’이다.
나의 교만한 자아는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면서 벗어나려 반항하지만, 사람은 오해와 무시도 받아보고, 육신적·물질적 고통이 무엇인지 겪으면서 기(氣)도 죽어봐야 자기 본성이 정화되고 겸손한 인간이 된다. 무가 소금물 밖으로 나오면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듯이 칭찬받고 인정받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만으로는 하느님 맛을 내는 자비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
방순자 수녀(성가소비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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