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계산하시는 하느님
그때에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루카 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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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돈으로 계산해 주신다.’ 하느님이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사람을 돈으로 계산하신다는 말인가? 이 말씀은 사람이 얼마만큼 물질에 대한 욕심을 비우는가에 따라 복을 주신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비우기 어려운 것이 ‘돈 욕심’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봉사를 몸 바쳐 할 수 있어도 물질에 대한 욕심을 비우는 일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 욕심을 비우는 사람한테는 축복으로 갚아주신다.
현대의 우상은 돈과 쾌락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하느님보다 ‘돈’을 좋아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하느님이 아니라 ‘돈’이다. 지금 당장 돈이 내 삶에 미치는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누가 ‘돈’만큼 힘이 있겠느냐?” 하며 돈 앞에 너나없이 엎드려 경배한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은 우리가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얽매일 때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이 시대에서 물질이 미치는 힘은 막대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가 부유해지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유흥비 때문에 이웃사촌 상관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 아래 죽이기까지 한다. 이는 돈이 사람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가치와 위력을 가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주일 미사는 쉽게 빠져도 재미있는 일이라면 돈이나 시간을 얼마든지 바칠 수 있고, 예전 같으면 부끄러울 일도 나만 즐거우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공공연히 떠벌리는 세상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많든 적든 사람이 일단 물질과 쾌락에 사로잡히면 노예가 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은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가 없다. ‘숨’은 바로 하느님의 생명이며 나의 생명이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지금 내 안에서 하느님의 숨을 막고 있는 나의 가시덤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내 마음이 어디에 무질서한 애착으로 묶여 있는가?
방순자 수녀(성가소비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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