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性)에는 구원이 없다 ---- 롤하이저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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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08-09-24 | 조회수92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내가 아는 한 수녀님은 비행기 여행 중에 활기에 찬 한 젊은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젊은이는 많은 의문 특히 독신생활, 육체적 순결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말하였다. “수녀님을 볼 때 나의 호기심를 자극하는 것은 분명히 당신도 생(生)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수녀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당신이 성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더 풍요로울까요?”
수녀는 솔직하게 답하였다. “내가 당신을 볼 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히 당신도 사랑을 찾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이오. 사랑과 섹스는 항상 같은 것이 아니랍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당신이 그것을 알았다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웠을까요?”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께서 왜 당신의 성(性)을 처녀성으로 육화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처녀성으로 사시면서 인간을 사랑하셨지만 당신의 과거행적에서 볼 수 있듯 축성된 독신이 결혼보다 더 낫다든지, 성생활이 영성 생활을 방해한다고는 결코 가르치시지 않았다. 오히려 하느님의 왕국은 인간의 사타구니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더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의 왕국은 사랑이 가득 찬 곳이지, 인간의 마음을 쥐어짜게 하는 곳이 아니다. 하느님과 모든 인간이 거짓이 없이 마음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사는 공동체를 이루면서 우정이 싹트고, 사랑이 움트고, 찬양으로 가득 차고, 활기 찬 그런 곳이다. 그 안에서 섹스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에 사무치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결코 왕국은 아니다. 변함없이 순결한 인간의 마음이 항상 서로 연계되고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애트우드(Margaret Atwood)가 시(詩)에 쓴 대로 “충치를 낫게 하고 충치구멍을 말끔하게 떼우는 임시방편적인 치과”가 아닌 곳이다.
예수님께서 사랑과 섹스의 관계를 워낙 극명하게 밝히셨으므로 더 이상 필요한 메시지는 없다. 오늘날은 성(性)을 구세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죄의 값을 치르다”, “십자가형까지 받다”, “고통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다”는 뜻을 가진 “구원”이라는 고전적인 용어를 “섹스”라는 용어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소위 섹스 지상 만능주의가 되어 버렸다. 사랑과 구원이라는 용어가 그리스도교에서보다도 마스터스와 존슨 연구팀(*역자주; William Masters와 Virginia E. Johnson이 성의 반응과 성의 무질서와 역기능에 대한 진단과 처리에 대하여 연구한 팀)의 용어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과 구원을 인간 마음의 영원한 만남이 아니라 인간 육체의 일시적인 짝지음이라는 생각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가는 외로움이다. 그리하여 인류역사 이래로 가장 고독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성에 대하여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외로움이나 불안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성의 자유와 복잡성 때문에 더욱더 쉬지 못하는 혼돈에 깊이 빠져들어 버렸다.
사랑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다. 섹스만으로는 구원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처녀성 논리는 무엇보다도 우정과 사랑, 봉헌과 공동체, 행복과 왕국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데 있다. 이런 마음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성이 공헌할 때에만 믿음과 순결을 통하여 기쁨과 질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성을 육화시켜 항상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마음이 이 세상과 왕국의 중심 실체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섹스를 하지 않거나 영성생활에 성의 즐거움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대로 바르게 성을 다루어야 한다. 이는 결혼을 했든 독신으로 있든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독신이고 순결하며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성적으로 깨끗하고 따뜻한 사람은 외롭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많은 도움을 준다. 독신은 사랑하고, 올바르게 살기만 하면 육신을 갖고 살면서도, 마음이 중심기관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육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해도 올바르게 살기만 한다면 이러한 진리를 가르칠 수 있다. 부부라도 독신자들이 하는 식으로 그리스도의 성에 대한 언동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몸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섹스의 즐거움이 영성생활에 어긋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처녀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다. 부부간에 품위가 있고 존경 받을만하고 정절(貞節)을 지키기만 한다면 성으로 만족하는 사랑도 육화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부부의 사랑은 성과 사랑을 통하여 적절한 인간관계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성을 성체화(聖體化)시켜 보여 주는 것이 된다. 이는 육화하여 성의 생명창조적인 힘을 유지하면서도, 섹스를 순결과 약속이행과 별개로 생각하는 오해를 불식시킴으로써 인생에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고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 참된 하느님의 왕국을 이 땅에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를 이해하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더 풍요로워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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