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는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입니다. 「장미의 이름」을 펴내 1980년대 세계문단에 돌풍을 일으킨 바 있지요.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윌리엄 수사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원에 파견됩니다. 윌리엄 수사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과는 놀랍게도 수도원의 도서관장인 호르세 수사가 범인이라는 것입니다. 호르세 수사는 높은 학식과 인품으로 수도원 안팎에서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호르세 수사가 왜 그랬을까요? 그는 수도자들이 금서를 보고 타락할까 우려해 금서의 책장에 독을 발라 놓았고, 이 때문에 금서에 손을 댄 수도자들이 잇달아 숨진 것이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한 윌리엄 수사는 다른 사람도 아닌, 호르세 수사가 범인이라는 데 대해 이렇게 개탄 합니다. “교만한 영혼,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는 진리… 그것이 바로 악마다.” 그리고 조수인 아드소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아드소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사람들을 조심해라. 그들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만드는 법이다.”
이 소설은 ‘독선과 아집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내 생각만 옳다고 하는 독선과 이를 바로잡지 않는 아집, 이것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더욱이 종교적 독선과 아집이라면 이는 영적 독재로서,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가 수없이 증명해 왔지요. 다른 예를 들 것 없이 우리 천주교만 들여다봐도 많습니다. 16세기 초 스페인의 군대가 남미 아즈텍 왕국과 잉카제국을 정복할 때 이들은 마리아 상을 앞세우고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지요. 호르세 수사나 스페인 군대는,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르는 악행이 의도적인 악행보다 훨씬 무섭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호르세 수사는 성경에 등장하는 율법교사의 다른 모습입니다. 또는 어느 시대,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의 한 유형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독선과 아집이 사람들을 여러 형태의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내 마음속 호르세는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김지영(한국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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