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의 작품 중에 <참나무(Oak)>라는 시가 있습니다. 봄·여름·가을을 보낸 뒤 겨울을 맞아, 그 찬란하고 무성했던 잎들을 떨구고 헐벗은 채 서 있는 참나무를 그린 것입니다.
이 시의 핵심 시어는 벌거벗은 힘(naked strength)입니다. 모든 치장을 다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참나무는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오히려 그 모습에서 혹독한 환경에 맞서 꿋꿋하게 살아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적 비유가 가리키는 것은 당연히 사람이지요. 결국 참나무의 ‘벌거벗은 힘’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영성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적 상상력을 좀 더 확장해 보면, 이 시는 ‘진실로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라면서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영성, 본질적인 그 하나에 충실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 <참나무>를 읽으며 저절로 세한도(歲寒圖)가 떠올랐습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으로 조선조 문인화의 정수라고들 하지요. 세한도에서는 추운 겨울날에 소나무가 의연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같은 겨울철이지만 테니슨의 <참나무>는 벌거벗었고, 추사의 소나무는 혼자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으니 그 형상은 정반대입니다. 그럼에도 두 나무의 존재 의미는 똑같습니다. 훼절되지 않는 정신과 생명력이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 일흔두 명을 여러 고을에 파견하시면서 맨몸으로 가라고 한 것은 바로 테니슨의 참나무나 추사의 소나무처럼 되라고 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 제자가 가야 할 곳, 해야 할 일은 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이것저것 재고 준비하고 할 것이 아니라 오직 꿋꿋한 믿음 하나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인생살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는 저에게도 절실한 주제입니다. 주님, 오직 꿋꿋한 영성 하나로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까마득한 벼랑 끝에서 성큼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김지영(한국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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