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거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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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8-10-18 | 조회수59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가거라>(루카 10,1-9) -유 광수신부 -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그러면 무엇이 무기인가? 그것은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님이 그 무기이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필요한 무기를 받아야 하고 예수님에게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 세상의 돈 주머니나 여행 보따리에 의존해 가지고서는 절대로 사나운 이리 떼 가운데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그것들에게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런것들에 의해 먹히고 갇히고 힘을 빼앗길 것이다. 복음을 전하려면 그런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고 어디를 가나 먹을 수 있는 보따리 즉 예수님을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좋은 차를 가져야 하고 경제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하고 안전한 거처지를 마련해야 하고 최신식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어야 한다. 즉 복음은 어떤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복음화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매체를 가지고 있고 좋은 시설을 갖춘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람이 복음화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화 되어있다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나 또 어느 도구를 사용하든 모든 것은 다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복음은 돈주머니나 여행 보따리나 신발에 달린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 달려 있고 그 사람이 사나운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위험한 장소에 파견되었다 하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화 되어 있으면 돈주머니나 여행 보따리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취약점은 복음을 전하는 돈주머니나 여행 보따리나 신발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복음화된 복음의 사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경씨의 "미래에서 온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병'이라는 메타포를 써서 표현하자면 '중독'과 '에이즈'의 세상이야. 이 지구화 과정을 일으키는 초국적 자본주의는 'BM2'로 인간 세상을 망치고 있지. 'BM2'는 이모가 만들어낸 Buiness, Money, Many, 즉 B.M.M 의 약자야. 세상을 큰 시장터로 만들고 온 땅을 비즈니스 게임터로 만드는 초국적 자본주의는 우리를 정신 없이 바쁜 사람들로 만들어 가고 있어. 모두 "바쁘다, 바뻐" 하고 아우성을 치지. 너무 바빠 자신과 가족, 이웃을 돌볼 시간이 없는, 정신 없고 분열된 개인을 만드는 것이 이 자본주의의 음모야. 정신 없는 인간을 지배하기는 참 쉬운 거니까. 그리고 이 정신 없는 개인들이 숭배하게끔 하는 신은 돈이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파하며 "돈교"에 입교시키는 거야. 그리고 뭐든지 많이많이 무한정 불려 나가야 해. 생산도 늘리고, 섹스도 더 진하게 많이 해야 하고, 차도 더 빨리 몰아야 하고, 뭐든지 더 많이, 더 진하게, 더 빨리; 해나지 않으면 실패고 퇴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것이 바로 중독의 과정이지. 중독된 사람은 그 중독을 야기시킨 대상 없이는 살 수 없게 돼. 그리고 중독의 정도를 더욱 더 심화시키다가 죽음까지 몰아가는 거야. '무엇 없이는 살 수 없다.' 라고 느낄 때, 우리는 이미 중독에 들어가 있는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메타포를 들자면, 그것은 '에이즈'야. 에이즈란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지. 우리의 면역체계는 몸 안에 균이 들어왔을 때, 그것이 우리의 참세포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고 백혈구를 동원시켜 죽이게 되어 있어. 그렇게 해서 몸의 온전성을 지켜갈 수 있지. 그런데 에이즈에 걸리면, 다른 균이 들어와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세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낼 능력이 없어져 버려. 때문에 무엇이 들어오든 상태가 되고 결국은 이물질 세포에 잡아먹혀 죽게 되는 거지. 이것은 영적으로 말하자면 '거짓자아'가 '참자아'를 잡아먹는 병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고도로 이름답게 포장된 거짓자아들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지. 대중매체의 광고들은 많은 경우 이 거짓자아 바이러스로 현혹시키고 있어. 이걸 먹으면, 이걸 바르면, 이걸 입으면, 이걸 타면....이런 식의 미사여구로 말이야. 이걸 쫓아가다 보면 참자아를 찾기는커녕 잡아먹히게 되는 거지. 이 가능성으로 임신한 침묵의 시간이 없다면, 그 홀로 있음의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위대한 창조도, 진정한 친밀함도 얻을 수 없어. 어떠한 큰 슬픔이나 고통도, 분노나 외로움도, 그리고 의미 없음도 기도와 명상에 의해 치유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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