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0.24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에페4,1-6 루카12,54-59
"세상의 중심"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공동체를 떠난 개인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와 같습니다.
공동생활은 현실이라 공동체를 떠나면
삶도 비현실적이 되어 환상 속에 살기 쉽고 사람 되기도 힘듭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내’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공동체 안에 몸담고 있을 때
‘제자리’가, ‘참 나’의 신원이 드러납니다.
공동체를 떠나선 ‘참 나’의 정체성도 실종입니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 공사를 반대하여
350여일 단식 투쟁을 한 후
산골 마을에서 2년 반 생활 중인
지율스님과의 인터뷰 기사 중 일부를 나눕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참 많이 애쓰셨어요.
밥도 해다 먹이고, 좋은 곳에 왔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가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 같아요.
이런 데서 사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는데 사니까 살아지고.”
평범히 들리나 깊은 깨달음이 담긴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디나 몸담고 살면 거기가 고향이고 세상의 중심입니다.
구체적으로 지금 여기 내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세상의 중심입니다.
중심 찾아, 하느님 찾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나 사람 사는 데는 비슷합니다.
결코 유토피아, 이상적 공동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치 어머니 품 같은 공동체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내 어머니가 제일이듯,
잘났든 못났든 내 공동체가 제일입니다.
참 소중하고 감사해야 할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것입니다.
이어 계속 된 다음 인터뷰 대목도 심오합니다.
-단식을 5차례나 하셨는데 후유증은 없습니까? -
“병원에 안 가서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상하게 제 몸에 대해서는
통증이나 아픔 같은 것을 떨어뜨려놔요.
어디가 아프면 그것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한 쪽에 놓고 저 하는 일에 전혀 지장을 안 받고 그냥 아파요.
너무 아프면 눕고, 아픈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예요.”
몸의 아픔을 손님처럼 여기며,
몸과 화해되어 사는 참 자유로운 경지의 수행자 지율 스님입니다.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하는 게 많아요. 일도 하고, 제 농사도 짓고.
기본적으로 제 생활을 지키지요.
일어나는 시간이 거의 정확해요.
새벽 3시 정도. 저절로 눈이 떠져요.
아침에 해 뜰 때까지 앉아 있다가
어르신들 농사일 하는 데 가서 배우고 품앗이도 해드리고,
바느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사진을 찍을 때도 있고
기록도 많이 하지요.”
몸담고 살아가는 산골 마을이
그대로 지율스님에겐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좋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에페소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는 노력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공동체입니다.
혼자 살면 겸손도 온유도 인내의 수련도 소홀해질 수 있으니
삶은 더욱 이기적이 되고 거칠어질 것입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겸손과 온유, 인내의 수행에 충실할 때
비로소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주시는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 맞아서 공동체의 일치가 아닌,
‘하나’ 안에서의 일치요, 이게 공동체 일치의 원리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나의 희망 안에’,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 안에’,
‘하나의 성령 안에’,
‘하나의 주님 안에’,
‘하나의 믿음 안에’,
‘하나의 세례 안에’,
‘하나의 하느님 안에’ 머물 때
비로소 공동체의 일치요 매일 미사를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만물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신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 자리 잡은 우리 공동체입니다.
이런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거점이 됩니다.
높은 산에서 주변이 두루 잘 보이듯이
이런 공동체 안에 정주의 산 되어 살 때
공동체 안팎을 잘 볼 수 있는 눈을 지닐 수 있습니다.
바로 분별의 눈이요 분별의 지혜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시대의 징조를 볼 수 있는 눈도,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분별의 지혜도,
좋은 공동체 안 ‘제자리’에서
겸손과 온유, 인내의 수행에 충실할 때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하나’ 안에서 공동체의 일치를 굳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겸손과 온유, 인내와 분별의 지혜를 선사하십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눈여겨보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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