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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제적 번영과 하느님-판관기80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8 조회수470 추천수5 반대(0) 신고

경제적 번영과 하느님-판관기80

  <생명의 말씀>
 이렇게 해서 단 사람들은 미가가 만든 신상과 그 신을 섬기던 사제를 데리고 사람들이 걱정없이 방심하고 사는 라이스로 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온 주민들을 칼로 쳐죽이고 성읍에 불을 놓았다. 그 성읍은 시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아람인들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와서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 그 성읍은 벳르홉 가까운 계곡에 있었다. 단 사람들은 그 성읍을 재건하여 자리를 잡고는 그 성읍 이름을 이스라엘에게서 난 저희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지었다. 그 성읍의 본래 이름은 라이스였다. 단 사람들은 가지고 간 신상을 세우고 섬겼다. 게르솜의 아들이요 모세의 손자인 요나단이 단 지파의 사제가 되었고, 그 땅 주민이 사로잡혀 갈 때까지 대대로 그의 후손이 사제 노릇을 하였다. 단 사람들은 미가가 만든 신상을 세우고 섬겼는데, 그 신상은 하느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줄곧 거기에 있었다. (판관기 18:27-31)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단 지파 사람들은 여호수아 시절에 하느님께서 정복하라고 분배해 주신 강력한 정착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떠나서 주변 부족들과의 연맹체제 없이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복하여 그 땅을 차지합니다. 공격 당했다고 해서 도와줄 외부 세력들이 있는 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도 정복도 모두 쉬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성읍의 이름을 자기 지파의 조상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명명하고, 미가의 집에서 가져온 신상을 세우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미가의 집에서부터 사제로 있던 젊은 레위인과 그의 후손이 대대로 (바빌론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망하여 모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 수백년 동안) 단의 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곳에 정착한 단 지파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잘 살았던 듯 합니다. '그 땅 주민이 사로잡혀 갈 때까지 대대로 그의 후손이 사제 노릇을 하였다'라는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 갈 때까지 사제 직분이 계승되었다고 하니까요.

말 그대로 성공했고 번영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애초부터 하느님을 떠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어겼을 뿐 아니라 미가가 자기 멋대로 하느님이라고 만든 신상을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제를 고용해서 섬기기까지 하는데 이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들이 하느님께 복을 받은 걸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핵심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고 따르고 있다는 보장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점이고, 경제적 번영과 성공이 반드시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을 따르지 않더라도 인간은 얼마든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군사적으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의 불가사의라고 불릴 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성했던 이스라엘 주변의 강대국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페르시아, 바빌론, 아시리아, 로마 등등.. 이들이 하느님을 섬겼기 때문에 강성해진 것은 아닙니다. 단 지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성공과 번영을 누렸던 것입니다.

 삼손 이전까지의 판관기 이야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범좌와 하느님의 징계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회개가 반복되어 나오는데 삼손의 이야기부터는 이 반복의 구조가 사라집니다. 이스라엘의 범죄 이야기는 나오는데 하느님의 징계 이야기는 빠집니다. 징계가 없으니 당연히 회개도 사라집니다.

 하느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게 된 것입니다. 그냥 죄짓고 살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 지파 사람들이 성공하고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도 하느님의 이 침묵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장 하반부에서 바울로 사도가 한 말이 바로 이 단 지파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로마서 1:22-24)

 위의 말씀에서 제일 무서운 구절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죄짓고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버렸는데도 아무 일이 없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태평성대와 만사형통으로 착각하고 더 많은 죄를 지으면서도 무감각하게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없는 성공과 번영은 오히려 더 무서운 재앙이 됩니다. 죄만 일삼지만 잘만 살아가는 모습이 결코 그 사람이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 지파를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구절에서 판관기 기록자의 단 지파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신상은 하느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줄곧 거기에 있었다.'

 하느님의 집은 실로 있는데 그 집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의 욕망을 투영하는 신상을 그대로 섬기면서 단 지파 사람들은 하느님과 상관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판관기 기록자는 단 지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아무런 직접적인 논평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그려 놓다가 마지막에 여운이 있는 한 마디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상관 없이 살았다....

 우리가 세상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는데... 우리 삶 전체를 조망한 하느님의 사람이 우리의 삶 전체를 요약하며 하는 한 마디가 '그는 하느님과 상관없이 살았다'라면 세례명 받고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허망할까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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