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하는 사람은 사사건건 시비를 겁니다.
잘하면 잘하는 데로 못하면 하는데로 걸고 넘어 집니다.
마귀를 쫓아냈는데도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쫓아냈다고 트집을 잡습니다.
은근히 속을 떠보며 처 놓은 그물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과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비판의 원래 의미는
“어떤 것의 본질 또는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중립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예를 들어, 성서나 문학 비평은
재조사하고자 하는 대상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끄집어내어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판을 받을 때 표현양식, 말투
그리고 내용 등이 자주 왜곡됩니다.
격려와 인도가 필요한 곳에 질책이 주어지고,
과감하게 수정해야 할 때 그냥 넘어 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정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왜곡들을 더 깊이 투사하면서 대응합니다.
이러한 전달 경로는 조금씩 파괴되고
긴장과 스트레스는 치수는 올라갑니다.
건강하고 건설적인 형태로
다른 사람들을 교정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감과 적극성을 다시 확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이러한 현실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친구들과 동료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뿌리는
자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발생합니다.
비판을 받으면 마음에 담아 두고 복수하고자 합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를 껴안고 어루만지며
염려의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의 건설적인 비판을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은 우리가 그것을 고발해서
분열을 일으킨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때 스트레스가 됩니다.
반대로 사려있게, 감수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서 받아들일 때
비판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고쳐주려고 할 때,
신체적으로나 말로 선의를 가지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방어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색을 보일 때,
우선 사람들의 말을 듣고 대응하기 전에 자신을 추수려야 합니다.
비판의 목적은 어떤 것에 대한 본질
또는 뿌리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
비판을 하기 전에 당신의 목표 지점을 가릴 수 있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거나 상황에서 오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오해나 분쟁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에게 찬양을 받는 것보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이 좋다(전도 7,5).
'나 자신을 찾아서'
상지피정의 집에서 문종원신부님지도로
2008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 2박 3일동안
가을피정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문의전화/010-3078-5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