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1.2 주일 위령의 날
지혜4,7-15 로마6,3-9 마태25,1-13
"삶과 죽음"
죽음이 있어 삶이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현세적 삶이라면
그 삶 긴장도 없고 얼마나 무기력하고 단조롭겠는지요.
삶에 대한 선물이란 자각도 감사도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누구에나 맞이하는 죽음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이요 죽음입니다.
그 누구도 세월을, 죽음을 피해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산 이들과 죽은 이들도 하느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여 우리 산 이들은 끊임없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도 바치고 연미사도 봉헌합니다.
특히 위령성월 11월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요,
오늘 11월 2일은 주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연옥에서 정화(淨化)중에 있는 영혼들이
하느님 나라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얼마 전 새삼스런 감동으로 와 닿는 미사경문 2양식 중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인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에 이어
곧장 산 우리들을 위한 간구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마리아와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소서.”
얼마나 큰 위로와 평화를 주는 은혜로운 기도문인지요.
살아 계신 하느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천상 영혼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는 연옥영혼들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문의 끝은
성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찬양으로 끝맺습니다.
며칠 전 웃으면서 수사님들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원수에 대한 최고 좋은 보복은 사랑과 용서요,
하느님께 대한 최고 좋은 보복은 찬미와 감사다.”
마땅치 않은 형제들이 있습니까?
사랑하고 용서하십시오,
이보다 더 좋은 보복은 없습니다.
이래야 나도 살고 너도 삽니다.
마땅치 않다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먼저 내가 다치고 상합니다.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못마땅합니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십시오,
이래야 축복을 받아 구원과 치유입니다.
이런 이웃 사랑과 용서에, 하느님 찬미와 감사에
미사보다 더 좋은 성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절망에서 샘솟는 희망이요, 죽음에서 샘솟는 생명이요,
어둠을 뚫고 새어나오는 빛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요 삶입니다.
그러니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죽을 때 까지 평생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시오.
잘 살다가 잘 죽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죽음 있어 삶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곧장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하여 우리의 사부 베네딕도 성인은 물론
지혜로웠던 옛 사막 수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죽음 대신 주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주님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모시고 살라.’
이런 지혜로운 이들은 죽음 앞에,
주님 앞에 욕심이나 환상의 안개와 어둠 완전히 걷힌
본질적인 투명한 삶을 삽니다.
또 이런 지혜로운 이들,
삶이 얼마나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인지를 깨달아
일일일생(一日一生), 지금 여기의 삶에 올인 합니다.
결코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거나 탕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주신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우리 인생의 최종 시험이 죽음입니다.
시험날짜라도 알면 준비라도 하겠는데
사람마다 하느님 주신 날짜가 다 다르니,
또 언제 갑자기 죽음 시험을 치를지 모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래서 늘 깨어 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할 수 있다면 생각나는 대로 화살기도를 바치십시오,
‘잘 살다가 잘 죽게 해주십시오.’
잘 사는 것은 물론이고 잘 죽는 것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들,
오늘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늘 준비하며 깨어 살 것입니다.
유비무환의 참 지혜로운 처녀들이었습니다.
죽음의 시험 준비에 벼락치기 공부나,
일정기간의 공부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죽음 시험 준비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영혼등잔에는 언제나 기름이 가득 차 있습니까?
믿음의 기름, 희망의 기름, 사랑의 기름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영혼 등잔에
이 믿음, 희망, 사랑의 기름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와 성경 공부, 자선활동을 통해
영혼의 등잔에 믿음, 희망, 사랑의 기름을 채우는 일이
그리도 중요한 겁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의 시간을, 주님 오실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늘 영혼의 등불 환히 켜 놓고 깨어 준비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게 영성생활의 궁극 목표입니다.
새삼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았느냐의,
즉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이 중요함을 깨게 됩니다.
1독서 지혜서의 말씀대로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습니다.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 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평생을 사는 이가 있고
평생을 살아도 하루를 못 사는 이도 있습니다.
늘 깨어 주님을 기다리며,
죽음을 준비하며 살 때 비로소 하루하루가 충만한 삶입니다.
주님은 이런 거룩한 이들을 돌보시고 은총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오늘 위령의 날 미사시간,
세상을 떠난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자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이고
내 영혼 등잔의 기름을 확인해 보는 시간입니다.
좋으신 주님은 당신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우리 모두의 영혼 등잔에
당신 생명과 사랑의 기름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주님, 세상 떠난 이들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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