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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5 조회수1,115 추천수18 반대(0) 신고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 루카 14,25-33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큰 십자가 앞에서>


    한 병실을 방문했다가 알콜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알콜 중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알콜만이 유일한 친구요 의지처요 돌파구가 됩니다.


    가끔씩 술에서 깨어나 바라본 현실은 너무나 암담합니다.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그러한 현실을 잊기 위해 또 다시 술을 입에 댑니다. 빨리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그냥 입에 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퍼붓습니다.


    너무나 걱정 되서 ‘제발 그만 드시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은 다 적군입니다. 술을 감추는 식구들을 향해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버립니다.


    더 증세가 진행되니 과대망상증도 따라오고, 본인과 가족들에게 수반되는 괴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런 남편과 살아가는 부인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너무나 괴로웠던 자매님, 한 사제를 찾아가 울며불며 그간의 괴로움을 털어놓았는데, 그 사제가 이런 말로 위로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자매님, 정말 대단한 인내심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남편의 알콜 중독은 하느님께서 자매님 어깨위에 얹어주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끝까지 침묵하시면서 그 십자가 기쁘게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 위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충고는 절대로 아닌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 우리는 기도 안에서 잘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최선을 다해 극복하라고 보내신 십자가인지, 신앙 안에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고 보내신 십자가인지를 기도 안에서 판별해나가야 합니다.


    위 자매님에게 다가온 알콜 중독이란 십자가는 백방으로 노력해서 극복해나가야 할 십자가가 분명합니다.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야, 하고 체념하거나 물러설 것이 아니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싸워 이겨야할 십자가입니다.


    모든 인간적 노력이 다 동원되고 나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나서, 그때서야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시켜야 그게 바람직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잘 새겨서 듣고,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묵상해야할 생명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삶의 십자가 앞에서 번민하는 우리에게 참으로 달콤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다양한 얼굴의 고통을 통해서 다가오는 삶의 십자가는 많은 경우 투쟁과 극복의 대상입니다.


    그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한 얼굴로 기쁘게 살아갈 것을 원하시지, 끝도 없는 고통과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괴롭히실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과 거슬러 싸우셨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인간을 해방시켜주셨으며,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배불리셨으며, 계속되는 실패에 기가 꺾인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즉시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기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난데없는 십자가 앞에서 이럴 수는 없다며 외쳐대고, 너무나 억울해서 몇 날 몇 일을 눈물로 지새우고, 끝도 없이 장탄식을 내뱉으면서 고통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는 크나큰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게 만들며,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방향을 설정하게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긍정하게 됩니다. 비로소 십자가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합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십자가 앞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납득이 불가능한 십자가 앞에서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심연의 침묵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어둠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어질 때 까지 침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님, 제게 보내신 이 십자가 앞에서 당신의 뜻을 온전히 납득할 수는 없지만 제가 인내할 수 있도록, 또 당신께서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8번 / 주님을 부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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