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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5 조회수594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이번 경제대책 중에서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은 지방의 반발이 아주 심한 것 같습니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지역에 지역구를 둔 친박측 의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거센 것 같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경감 문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이번 대책에서 빠졌으며,
종부세는 위헌여부가 13일 선고되므로 헌재에서 총대를 메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합헌으로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정부가 태도를 바꿔 실무자 착오라는 엉뚱한 변명으로 현행 법률에 대하여 위헌 의견서를 제출하는 이런 기막힌 일도 다 있습니다.
정부 스스로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으면 법률 폐지안을 제출하면 될 것을 헌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소규모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시설장님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숙식하는 도우미는 두 사람이며 그 두 분은 모두 개신교 신자라 하였습니다.
주일도 순번으로 쉬어야 하기 때문에 매 주일마다 다니는 교회를 나갈 수 없으므로 근무하는 주일이면 가까운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를 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우미에게 교회 목사는 주일도 쉬지 못하는 직장은 '그만 두라'하며 또, 교회도 다니는 교회를 다녀야지 다른 곳에서 예배를 보면 안 된다고 하였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한 단면을 듣는 것 같아서 씁쓸했던 기억이 새삼 스럽습니다.
이런 얘기를 예수님이 들었다면 지금 교회가 당신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한탄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독하며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차라리 복음서에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쩜 오늘 복음과 같은 말씀 때문에 위와 같은 목사도 생겨날 수 있고 오늘 말씀 때문에 가족을 모두 버리고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도 불행에 빠뜨리게 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오늘 복음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베푸신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예수님 허리띠를 꽉 붙잡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더 좋고 간편한 방법이 있으면 당연히 그 방법을 따라야 하지만 그 방법을 저는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라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믿습니다'하는 信者는 넘쳐나고 있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遵者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遵者가 되고 싶지만 오늘은 어쩜 遵者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교회는 遵者는 필요없고 信者를 더 좋아하므로 교회에서는 더 환영받을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고 제 목숨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므로 값지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혈육 모두를 미워하고 심지어는 제 목숨까지 미워해야 제자가 될 수 있다 하시므로 저는 하느님의 잔치에 참석 못해도 좋으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예수님께 따져야 하겠습니다.

이를 따져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찬미합니다' 하면 저는 신자는 커녕 맹신자 중에 맹신자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맹신자가 되어서 가족을 미워하고 제 목숨도 미워해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재고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예수님께 따져 묻자 예수님은 '너는 마태오 복음도 읽어 보지 않았느냐' 하십니다.
화들짝 놀라서 마태오 복음을 펴 봤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 10,37)

이제는 알겠느냐 하십니다. '예, 이제는 무슨 말씀인지 알 듯 합니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제게 이렇게 다시 여쭤보십니다.
'나는 지금 하늘에 있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겠느냐' 하십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칭찬을 해 주실지 알았는데 또 물어 오십니다.

'그럼, 너는 왜 내 말을 그대로 따르려 하느냐' 하십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분부하신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제는 '착한 종아!' 하시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지 알았는데 '야! 미련 밥통아' 하시며 군밤이 한방 날라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왜 군밤을 한방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은 저를 하느님의 아들로 승격시켜 주셨는데
아직도 종놈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군밤을 한방 얻어 맞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렇게 대답했으면 칭찬을 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맏형님의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 무엇에 앞서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이 당신의 제자가 되는 길이라고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내 가족만 알고 내 자신만 생각한다면 이는 진리의 삶이 아닐 것입니다.
진리의 삶은,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우리 삶도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진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제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이며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이타행을 실천하며 遵者의 길을 걸어 가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오늘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오늘 묵상을 끝낸 지금에서야 비로소 뒤늦게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하며 화답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진리의 삶을 살아가며 이타행을 실천하라 하였습니다.
진리의 삶과 이타행이 주님의 따르미가 되는 길이라고 믿사옵기에
주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런 저희를 어여삐 여겨시어 제 십자가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또한 모든 이가 저희 혈육이며 저희 자신임을 잊지 않도록
오늘도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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