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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적인 영적 여정과 외적인 영적 여정 ---- 롤하이저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5 조회수641 추천수2 반대(0) 신고
 침묵만큼 하느님의 말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하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d)는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침묵 속에서만 스스로 할 수 있는
내적인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침묵과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공동체가 자선 학교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과 교류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숙성과 건전함과 융통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만 배울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해야 한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영성 작가들은 개인기도와 묵상을 통해서만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강조하였다.
 “침묵 중에 마음 속에 있는 고통스러운 것들을 찾아 내지 못하면
어떻게 진지한 기도와 회심이 가능하겠는가?하고 생각하면서
피정 시에 침묵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일반적으로 침묵을 두려워하고 피하면
피상적으로 보게 되며 내면 깊은 곳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느님과 자신만이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때도 많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발견할지도 모르는 그 고통스러운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침묵하며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말한 바와 같이
내면 깊은 곳에 들어가야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고통스러운 것을 만날까 봐
오랫동안 혼자 침묵하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며
마음 속 깊이 영적인 여행을 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깊이 들어 가지 않고 거죽에만 머무르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영성 작가들이 내면과 침묵을 강조해 온 것은
우리들이 침묵과 고독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여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영성은
항상 우리들의 생활, 가족, 교회에 가는 일, 공동체 참여와 같은 사회적인 면을 강조해왔다.
사회 생활도 건전한 영성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수많은 영성적인 책들에서는 침묵과 고독뿐만 아니라
가족과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하며 교회활동에 참여할 것을 강조해왔다.
공동체를 멀리 하고 자신의 내면에만 갇혀
가족과 공동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이기적으로 빠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면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침묵과 고독만을 강조하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되고
공동체와 교회만 강조하면 내향적인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나 양면을 모두 이행하며 사는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면 침묵 중에 혼자서만 할 수 있는 내면적인 일이 있으며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교류를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성숙함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고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며
자기 안에 갇혀서 사적인 공상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는 침묵하면서도 사회적이어야 한다.
혼자서 너무 오래 너무 자주 침묵하여 자신의 깊은 곳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환상 속에서 살 가능성이 많다.
역으로 혼자 침묵하는 것을 멀리하고 지나치게 사교적인 사람이 되면
사물을 피상적으로 보게 되고 매일 일어나는 가십거리에만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침묵과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보다 냉정함과 이해력이 부족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에는 침묵과 사회성 모두 필요하다.
이분법적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자신이 함께하는 영적 여정에 꼭 필요한 두 기둥이다.
 
 침묵과 친교 안에는 역설적인 면이 있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것처럼
혼자 침묵 중에 있을 때 서로 참된 교류를 할 수도 있으며,
역으로 우리들이 혼자서 침묵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가끔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면서도 신비스러운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도 있다.
혼자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더 깊은 친교를 이루게 되고,
사교적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활발히 친교를 이룰 때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다.
 
내적 영적 여정과 외적 영적 여정은 다같이 중요하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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