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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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작은 요한아(마리아 발또르따 애칭), 많은 사람이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하겠지만, 때가 되기전에 영원하신 주님을 알고, 그분의 이 세상 생애를 아는 은혜를 받는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산상 설교. 진복팔단 (제 1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시어 각자에게 자리를 정해서 군중을 인도하고 보살피게 하신다. 군중은 아침 일찍부터 올라오는데, 병자를 안거나 들것에 실어서 데려오기도 하고, 어떤 병자들은 목발을 짚고 어렵게 올라오기도 한다. 군중 가운데에 스테파노와 헤르마도 있다. 공기는 맑고 약간 차다. 사람들은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계곡에 널려 있는 돌과 바위에 앉고,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땅바닥에 앉으려고 이슬에 젖은 풀이 햇볕으로 마르기를 기다린다. 예수께서는 계곡 안쪽에 있는 풀밭보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암벽에 기대어 앉으셔서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내가 일년 동안 전도하는 중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하늘이 무엇인지 나라가 무엇인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도대체 나라란 무엇이고 하느님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라가 어떤 것이며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여러분에게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애를 쓴 것은 내 생각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나라에 관하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쌓이고 쌓인 일련의 관념체계와 충돌하는 진리를 여러분에게 수락하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고, 하느님에 관하여는 그분의 성질의 숭고함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런 질문도 했습니다.
‘나라가 무엇이며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좋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나라와 하느님을 얻습니까?’하고.
여기서도 나는 시나이산의 율법의 참다운 정신을 여러분에게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이 정신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하늘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시나이산의 율법을 설명하려면 입법자와 그분의 예언자의 엄한 말투로 이해시켜야 합니다. 그분들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약속하시지만,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서운 벌과 저주로 위협하십니다. 시나이산의 발현은 무서운 것이었고, 이 공포는 율법 전체에 반영되고, 모든 시대와 모든 마음에 반영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입법자만이 아니시고, 아버지이기도 하십니다. 아버지라도 무한히 인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마, 아니 의심의 여지없이, 원죄와 여러 가지 격정과 죄로 인하여, 그리고 가지가지 이기주의로 인하여 약해진 여러분의 영혼은 하느님의 무한한 많은 완전을 관찰할 만큼 높이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완전보다도 인자(仁慈)는 더구나 관찰하기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랑과 더불어 제일 사람들의 몫이 되지 못하는 덕행이기 때문입니다. 착함! 오! 미워하지 않고, 샘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착하게 구는 것의 즐거움! 사랑하기 위해서만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는 것, 오직 사랑의 행동을 하기 위해서만 내미는 손, 사랑의 말만을 하는 입술을 가졌다는 것, 특히 사랑만 가득 차 있어서 눈과 손과 입술로 하여금 사랑의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 유식한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나를 나쁘게 판단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지 마시오.
‘저 사람은 미친 사람이고, 거짓말쟁이다! 죄가 우리에게서 은총을 없애버렸는데, 우리 안에 은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미친 사람이 틀림없고, 우리가 벌써 하느님과 일치해 있다고 말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하고.
죄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갈라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세주의 능력 앞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들 사이의 잔인한 갈라짐인 죄가 새로운 삼손에게 흔들린 벽과 같이 무너질 것입니다. 나는 벌써 그 벽을 붙잡아서 흔들고 있고 벽은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내 능력에 대항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그에게서 수많은 먹이가 빠져나가고 사람을 죄로 끌어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고 힘은 없고 해서 몸을 떱니다. 그것은 내 주선으로 여러분을 내 아버지께로 데려가고, 내 피흘림과 내 고통으로 여러분이 깨끗하고 힘있게 되면, 은총이 생기 있고 발랄하고 강력하게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이고, 여러분이 원하면 승리자가 되겠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어떤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을 거룩하게 되라고 강제로 시키지는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힘을 도로 주십니다. 여러분을 사탄의 지배에서 구해 주십니다. 지옥의 멍에를 다시 지든지 여러분의 영혼에 천사의 날개를 달아 주든지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형제로 생각해서 내가 여러분을 인도하고 불멸의 양식으로 양분을 주게 하는 것은 순전히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시나이산의 엄격한 길보다 더 쉬운 다른 길로 해서 어떻게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여러분은 말합니다.
다른 길이 있지 않고, 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위협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사랑의 관점에서 봅시다. 죄를 기다리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고 떨면서 ‘만일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불행할 것이다!’ 하고 말하지 말고, 오히려 ‘만일 이것을 하면 나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하고 말합시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기쁨의 충동으로, 마치 가시가 많은 덤불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듯이 율법을 지키는 데에서 생겨나는 저 진복을 향하여 기쁘게 돌진합시다.
‘마음으로 가난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그러면 하늘 나라가 내 것이니까!
온유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내가 땅을 차지할 것이니까!
반감을 가지지 않고 울 수 있으면 나는 지극히 행복하다, 내가 위로를 받을테니까!
육신을 배불리 먹이는 빵과 포도주보다도 옳은 일에 주리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정의가 나를 배부르게 할 테니까!
자비를 베풀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테니까!
마음이 깨끗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깨끗한 내 마음을 굽어보실 것이고, 나는 하느님을 뵙게 될 테니까!
평화의 정신을 가지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내가 평화와 사랑 속에 있을 것이고 또 하느님은 당신과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나를 당신 아들이라고 부르실 테니까!
정의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내가 받은 이 세상의 박해를 보상하시려고 하느님께서 하늘 나라를 내게 주실 테니까!
하느님, 제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저를 모욕하고 비난하면 저는 지극히 행복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게 슬픔을 갖다주지 않고 기쁨을 갖다주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저는 당신의 가장 훌륭한 종들인 예언자들과 같은 수준에 놓이게 될 것이고, 그들과 더불어 제 것인 하늘에서 그들의 것과 같은 크고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인들의 기쁨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바라봅시다.
‘마음으로 가난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오! 재물에 대한 악마 같은 열병, 너는 사람들을 어떤 망상으로 몰아가느냐!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파멸한 그의 정신의 더러운 우상인 그의 황금을 위하여 사는 부자를.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에 대한 증오로 살면서, 물질적으로는 살인자가 되지 않더라도 부자들이 가지가지 불행을 당하기를 기원하면서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가난한 사람을. 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죄를 지을 마음까지도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불행과 죽음을 당하기를 기원하면서 저주하는 사람은 실제적으로 죽이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미워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망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잘 들어두시오. 욕망은 마치 이미 형성되었으면서 배출은 되지 않은 어떤 착상(着想)의 결과와 같이 우리가 억제하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나쁜 욕망은 폭행보다도 더 오래 가기 때문에 중독을 일으키고 썩게 합니다. 욕망은 행위 자체보다도 더 깊게 뿌리를 내립니다.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부유해도 재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고, 오히려 재물을 가지고 사랑을 행하기 때문에 그의 재산은 그 사람의 성화를 이룩합니다.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는 그 사람은 사막에서 여행자를 구해 주고, 실망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자기를 줄 수 있는 것을 기뻐하며 아낌없이 자기를 주는 저 샘물들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가난하면 자기의 가난을 기뻐하고 자기가 먹는 빵을 기분 좋게 생각합니다. 그가 기뻐하는 것은 그가 재산에 대한 열병을 모면하고, 그의 잠은 악몽을 모르고, 잘 쉬고 일어나서 조용히 일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일을 탐욕없이 부러움없이 하므로 그에게는 일이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황금을 가지고 있어서 물질적으로 부자일 수도 있고, 그가 애착을 느끼는 것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부자일 수도 있습니다. 황금이라는 말에는 돈뿐 아니라, 집, 밭, 보석, 가구, 가축떼, 요컨대 생활에 여유를 주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정신적인 재산은 친척이나 인척관계, 우정, 지적인 재산, 공적 따위들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첫 번째 종류의 재산에 대하여는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 나로서는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처지에 만족한다.’고. 둘째 종류의 재산에 대하여도 가난한 사람은 역시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도 그의 정신이 초연하지 않으면 죄인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요.
‘아니 그러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을 미워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가?’ 하고.
구별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내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범위 안에서, 즉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만유 위에 또 우리의 전체를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가령 우리를 젖을 먹여 기른 어머니를, 우리 가슴에 안겨 자면서 우리에게 아이들을 낳아주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우리 전체를 기울여, 즉 사람에게 있는 사랑하는 능력 전부를 기울여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는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쏟는 것과 같은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
사랑은 악이 아니고 또 악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들은 사랑입니다. 은총들은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많은 자애와 선을 사랑을 가지고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지 않고, 성덕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을 만드는 사람만이 그 선들에 대한 죄 되는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 사람이 최고의 재산이신 거룩하신 하느님을 더 자유롭게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거룩한 마음의 가난을 닦는 것입니다.
‘온유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예(例)와는 대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온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정과 도시와 나라에서 승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승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폭군에게 짓눌리는 사람들을 외양으로 보아 굴복시키는 공포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폭군에 대한 반란의 폭발을 가리는 베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을 잘 내고 강압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의 마음도 동향인들의 마음도 그들의 신민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합니다. .......
참을성 있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온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사로잡으러 가지않고, 영혼들을 하도 난폭하고 강경하게 대하기 때문에 마치 공격을 시작하는 무장한 전사들 같은 사제들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 오! 불쌍한 영혼들! 만일 그 영혼들이 거룩하면, 사제들이여, 그들이 빛을 찾아가는데 당신들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빛을 벌써 자기들 안에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만일 그들이 올바르면, 재판관들이여, 그들이 사법의 구속으로 제지되는데 당신들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들 안에 정의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만일 그들이 건강하면, 그들을 치료해 줄 사람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온유하시오. 사람들을 달아나게 하지 마시오. 그들을 사랑으로 끌어들이시오. 온유도 마음으로 가난한 것과 같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온유하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소유였던 이 영토를 하느님께 갖다 드릴 것입니다. 과연 사랑과 겸손이기도 한 여러분의 온유는 영혼들 안에서 교만과 증오의 비열한 왕을 죽임으로써 증오와 교만을 이길 것이고, 그러면 세상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하느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을 우주의 절대적인 주재자로, 우리가 찬미 찬양하고 그분의 것을 모두 돌려드려야 하는 절대적인 주재자로 인정하는 의인들이겠기 때문입니다.
‘반감을 가지지 않고 울 줄 알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은 사람에게서 눈물을 자아냅니다. 처음에는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고통을 세상에 가져왔고 그의 지능의 타락으로 인하여 가지가지로 그 고통을 크게 하려고 애씁니다. 여러 가지 병이 있고, 벼락과 폭풍우와 눈사태와 지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불행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괴로움을 당하기 위하여 점점 더 무서운 살인용 무기와 점점 더 교활한 정신적 고문을 생각해냅니다. 사람이 은밀한 그의 왕인 사탄의 교사(敎唆)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까! 그러나 진정 말하지만, 이 눈물들은 사람을 약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하게 합니다.
사람은 정신이 산만한 어린 아이이고, 경박한 얼빠진 사람이며 늦게 지능이 계발되는 존재로서, 눈물을 흘려야 비로소 어른이 되고 깊이 생각하게 되고 지적인 사람이 됩니다. 지금 울거나 전에 울었던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알고 이해할 줄 압니다. 자기와 같이 우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울 때에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고통이 되는지를 체험해서 아는 친절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줄 줄 압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압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하였고, 하느님의 가슴에 안겨서 울면 고통이 덜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믿음을 부수지 않고 기도를 무미건조하게 하지 않고 반항을 알지 못하는 체념한 눈물은 성질이 변해서 고통이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서 우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 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사람은 음식을 탐합니다. 사람은 나면서 젖을 물려고 입을 벌리고, 임종의 짓누르는 고통의 속에서도 기운을 회복할 것을 먹으려고 입술을 벌립니다. 사람은 먹기 위하여 일을 합니다. 땅은 사람에게 어마어마하게 큰 젖과 같아서 죽을 것을 위한 양식을 달라고 끊임없이 땅에 청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동물입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긴 세월 또는 짧은 세월을 귀양살이를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거처를 옮긴다고 해서 그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호두 껍질이 호두가 아니고, 속알맹이가 호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호두 껍질을 심으면 아무것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이 있는 호두알을 심으면 큰 나무가 생깁니다.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불멸의 것이 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불멸로 이끌어가기 위하여는 영혼에 양분을 주어야 하는데, 영혼은 육체도 지극히 행복한 부활로써 불멸의 것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양식은 지혜와 정의입니다. 지혜와 정의는 튼튼하게 하는 액체와 음식처럼 흡수됩니다. 이것으로 양분을 취하면 취할수록 지혜를 차지하고 정의를 알고자 하는 거룩한 탐욕이 커집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욕구를 게걸스럽게 탐하는 영혼이 배불리 먹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올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식에게 당신을 주실 것이고, 그를 직접 당신 가슴에 갖다대실 것이며, 하늘에 간 자식은 하느님 자신이신 놀라운 어머니의 품에서 배불리 먹을 것이고, 다시는 절대로 시장기를 느끼지 않고, 하느님의 품에서 지극히 행복하게 쉴 것입니다. 어떤 인간 지식도 이 숭고한 지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지능의 호기심은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욕구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쓴 젖통에는 혐오를 느끼고 입을 떼고,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음식을 먹기보다는 배가 고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낫게 여깁니다. 하느님을 찾거나 갈망하는 여러분은 아직 걱정도 하지 마시오! 끝까지 충실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 여러분을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사람들 중에 ‘나는 자비를 입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 율법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으니, 새 율법에서는 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하고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용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를 얻는 것은 둔한 사람의 정신에게 주어진 외적인 상징에 지나지 않는 의식의 말투나 형식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사랑의 내적 의식, 그보다도 자비의 내적 의식입니다. 염소 수컷이나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치고 돈 몇 푼을 헌금하라고 명한 것은 어떤 악이나 그 바탕에는 역시 항상 탐욕과 교만이라는 두 가지 뿌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탐욕은 제물을 위해 쓰는 비용으로 벌을 받고, 교만은 의식 때에 ‘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 제사를 바칩니다.’ 하는 공공연한 고백으로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올 시대와 시대의 표들을 예고하기 위하여 행해졌고, 피를 흐르게 한 것은 사람들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흘릴 거룩한 피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굶주리고 헐벗고 집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비로울 줄 아는 사람, 그들 자신과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한층 더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은 지극히 행복합니다. 자비를 베푸시오. 용서하고, 동정하고, 구조하고, 가르치고, 도와주시오. 여러분은 수정탑에 들어박혀서 ‘나는 깨끗하다. 나는 죄인들 있는 데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하지 마시오. ‘나는 부자이고 행복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재산과 여러분의 건강과 여러분 가정의 안락이 센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보다도 더 빨리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그리고 수정탑은 돋보기 구실을 해서, 여러분이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 여러분이 혼자 따로 떨어져 사방에서 채광이 잘 되는 수정탑에 들어 있으면 숨길 수가 없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은밀하고 계속적이고 거룩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자비를 얻기 위하여 자비를 베푸시오.
‘마음이 깨끗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깨끗함 자체이십니다. 천국은 깨끗함의 나라입니다.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느님이 계신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이 부정하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주시는 미리 맛보는 기쁨입니다! 깨끗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 나라를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깨끗한 사람을 굽어보시고,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이 그의 하느님을 뵙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인간의 사랑의 맛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황홀경에 이르기까지 맛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과 같이 있고 당신은 제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을 차지하고 있고, 제 영혼의 정배로 알고 있습니다.’ 하고. 하느님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를 거룩하게 하고 지혜롭게 하고 힘있게 하는 그 자신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의 입술에는 말의 꽃이 피고, 그의 행위는 피조물에게서 오지 않고 그의 안에 살고 계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능력을 가집니다.
하느님을 보는 사람의 생활은 어떤 것입니까? 진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역겨운 부정으로 이런 선물을 포기하려고 하겠습니까?
‘평화의 정신을 가지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평화는 하느님의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평화 안에서만 계십니다. 평화는 사랑이고 전쟁은 증오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증오입니다. 하느님은 평화이십니다. 성마른 성향을 가지고 걸핏하면 감정의 격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고, 하느님께서도 그런 사람을 당신 아들로 인정하실 수 없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감정의 격동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일으킨 폭풍우를 그의 큰 평화로 가라앉히는 데 이바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어도 평화를 풍깁니다. 그는 공기에서 격한 감정의 가스를 몰아내서 깨끗하게 하고, 하느님의 아들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평화의 정신이라는 저 기분 좋은 기름으로 소송의 성난 파도를 가라앉힙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여러분을 그렇게 부를 수 있게 하시오.
‘정의를 사랑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 나는 지극히 행복하다.’
사람은 하도 악마같이 되어서 선이 있는 곳 어디서든지 그 선을 미워하고, 마치 착한 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까지도 자기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여겨 착한 사람을 미워하게끔 되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의 착함이 악인의 악의를 한층 더 더럽게 보이게 합니다. 사실 진짜 믿는 사람의 믿음은 가짜 믿는 사람의 위선을 한층 더 생생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사실 그의 생활 태도로 끊임없이 정의를 위하여 증언하는 사람은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전쟁에서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사랑의 거룩한 기술이 진보하기보다는 박해하는 악마적인 기술이 더 진보합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이 짧은 그것밖에 박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안에 있는 영원한 것은 함정을 모면하고, 그로써 박해라는 사실에서 더 기운찬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 그러나 피는 미래의 왕의 주홍빛 옷이 되고, 궁핍은 하느님께서 당신 순교자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옥좌에까지 올라가는 사다리의 가로장 하나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훌륭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욕을 당하고 중상을 당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여러분의 이름이 마땅히 하늘 나라의 책에 적히게 할 일만 하시오. 그 책에는 사람들의 거짓말이나 받을 자격이 가장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찬사에 따라서 이름이 적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착한 사람들의 행동이 정의와 사랑으로 적혀서 하느님의 강복을 받은 사람들에게 약속된 상급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을 중상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문이 열리면, 예언자들은 위엄있는 왕들과 같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고 기뻐 노래하는 천사들의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모욕을 당하고 중상을 받으면, 여러분도 하늘 나라에 개선할 것이고, 때가 다 지나가고 하늘 나라가 가득 차면, 그 때에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여러분에게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약속하는 그 영원한 영광을 여러분은 그 눈물로 얻을 테니까 말입니다.
자 이제는 가시오. 내일 여러분에게 또 말하겠습니다. 병자들만 남아 있도록 하시오. 내가 그들의 고통을 구해 주게.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묵상을 사랑의 방법으로 해서 여러분이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유의점 : 이 책은 현재 명동성당 서점과 가톨릭회관 서점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서점 등 가톨릭 관련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특히 이 책에 대한 < 추천의 말씀 >과 < 비오 12세 교황님의 말씀 >과 < 신앙교리성성의 말씀 >은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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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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