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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5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5 조회수563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물을 무단반출하였다고 하여 무슨 대단한 국가기밀사항과 공식문서를 무단 반출한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서 조사까지 받아야 할 무슨 대단한 사건으로 알았으나 검찰 스스로도 지금 진퇴양난인 모양입니다. 

그 기록물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며  작성한 업무일지와 메모, 정책검토 내용 등으로 전직 대통령들은 이를 모두 폐기하거나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든 기록물들은 사초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으므로 '국가기록물 보관법'을 스스로 제정하여 개인적으로 보관하지 않고 국가에서 대신 보관토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를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기록물을 생산한 대통령 본인과 그 위임을 받은 사람만 열람할 수 있으며, 타인이 열람하고자 할 때는 헌법 개정과 동일하게 국회의원의 2/3의 동의를 받아야 열람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수사상 필요로 열람을 하고자 할 때는 지방법원이 아닌 고등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토록 하였습니다.

열람의 편의를 위하여 디지털 사본을 보관하였다고 기록물 유출로 검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직접조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니 사실 황당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독하며 첫 떠오르는 생각은 至誠이면 感天이고, 盡人事待天命 또는 우는 애기 젖 한 번 더 준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至誠과 盡人事또는 우는 애기가 바로 기도일 것이며, 感天과 天命과 젖이 기도에 대한 응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감나무 아래에서 입만 벌리며 기도한다고 하여 감이 입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산을 가야 호랑이를 잡든 토끼를 잡든 그 무엇을 잡을 수 있듯이 기도도 빌 것을 빌어야 하고, 기도는 실천에 그 목적이 있으므로 올바른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먼저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올바른 기도는 이런 것이다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시며 올바른 기도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 5-8)

올바른 기도는 '주님의 기도' 처럼  언제나 거룩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공의와 감사 그리고 반성과 다짐 등으로 이뤄져야 하며 자신의 기복을 바라는 기도는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지만 '주님의 기도' 처럼 기도도 바른 기도를 해야 하며 빈 말이나 되풀이 하고 기복을 바라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재판의 당사자는 과부이고 재판관은 불의한 재판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살펴 줘야 할 불쌍한 사람의 표본은 구약에서는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이방인)입니다. 이렇듯 오늘 재판의 당사자인 과부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며, 불쌍한 사람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으므로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불쌍한 사람의 청을 들어 주지 않으면 불의한 사람이며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오늘 제 모습도 이를 통하여 반성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계속된 하소연에 지겹고 귀찮아서 끝내 그 청을 들어 준 사실을 비유하시며 하물며 불의한 재판관도 이럴 질데 어찌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하셨습니다. 오늘 묵상은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만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일까요? 우리 그리스도교의 독선과 아집과 배타 등 모든 병폐는 바로 여기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그리스도교가 탄생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단 한 사람도 하느님이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또 우리 땅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태어난 우리 조상님들은 단 한 사람도 하느님이 선택하지 않아서 우리 모든 조상님들은 모두 지옥 불에 떨어졌을까요?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은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습니다.(요한 1.1). 예수님은 다만 그 말씀을 무지한 민중들에게 알려주고 실천하신 분입니다. 진리는 곧 우주 질서이므로 하느님과 함께 태초부터 있었으며 누가 새롭게 만든 것도 아니고 누가 말하였다 하여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듯 진리의 삶을 사신 분들이 바로 하느님께 선택된 분들이며 교회에 다닌다 하여 또는 성직자라 하여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의 여부는 하느님이 결정하는 것이며 하느님께 여쭤봐야 하고 우리 인간들 임의대로 결정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또한 하느님은 우리 그리스도교만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이치를 주관하시고 대자대비하시고 지고지선인 분이 하느님이시므로 그 분을 어떻게 호칭하든 그 분은 바로 그 분이시며 우리는 그 분을 우리 신앙에서 하느님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 또한 우리 민족의 고유 언어에 하느님이란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며 만약 우리 고유 언어에 하느님이란 언어가 없었으면 우리는 또 다르게, 영어권에서 'GOD'로 호칭하듯 우리는 또 다른 언어로 불렀을 것입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서도 절대자를 우리 언어로 하느님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을 이름하든 우주 이치를 주관하시고 대자대비하시고 지고지선인 분을 절대가치로 인식하는 종교는 모두가 동일한 절대가치에 수렴되므로 동일한 것이며, 강자가 약자를 포용하는 의미에서의 포용주의, 우리 가톨릭은 사실 이런 포용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개신교는 이런 포용주의조차 배제하고 있습니다. 포용주의보다 더 열린 종교관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생각하는 다원주의입니다. 허나 이렇게 구분하는 것조차 사실 무의미하며 모두가 절대가치를 추구하므로 동일한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종교간의 대화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서로 보완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얼마전 열린 종교의 쎄미나에서 정양모 신부님은 “신약성서로 돌아가면 지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를 신격화한 것과 달리 예수를 보는 관점이 아주 다양해진다”는 말로 예수를 보는 관점에 따라 종교간 대화 가능성이 달라진다 하였으며.
 
또 도법 스님은 “종교이기 때문에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종교를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이해한다면 종교간 벽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으며 이현주 목사님은 “나의 스승인 예수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했고, 내가 목사가 된 것도 사람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라며 “천주교인이나 불교도 모두 사람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산 전체가 하나인 것을 서로 내가 등정한 코스가 올바른 코스라고 우기고 있으니 대자대비하시고 지고지선하신 분께서 얼마나 우리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묵상은 이렇게 자유자재로 비약하므로 언제나 묵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이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무조건 기도하였다고 청을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을 하시므로 끝내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승리를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정의는 곧 진리이며 우리는 진리가 아닌 것으로 지금 쌈박질을 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은 현재 누구 편도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으로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이 땅에 오는 날은 내 말이 모두 실현되는 날에 올 것이며 내 말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나는 오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오지 마시라고 하여도 이미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며 그렇지 않고 재림만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은 오늘 가르침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서 빨리 주님의 말씀이 실현된 그런 세상이 되어 주님께서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하시길 소원하며 오늘도 아빠 하느님께 제 소망을 기도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 이 땅에서 왜곡되고 있는 사실이 너무 서글픕니다.
오늘 이 시각에도 주님은 제게 말씀을 양심것 바르게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어찌 주님의 말씀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주님만을 생각하며 말씀을 실천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깨달아 항상 깨어있도록 언제나 성령님의 지혜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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