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굳이 되돌아가려 하지 않아도 . . . . [류해욱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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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혜경 | 작성일2008-11-17 | 조회수861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 호시노 토미히로님의 그림 -
일본의 화가 호시노 토미히로를 소개하면,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선생님이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방과 후 체육 동아리를 지도하다가 경추손상을 입어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한 불운의 사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운을 행운으로 바꾼 놀라운 사람이지요. 그는 장애의 몸으로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수많은 저서를 펴냈고, 특히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라는 시화집은 200만부나 팔렸고, 그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지요.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토미히로 미술관에는 매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저도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입니다. 오늘 다시 그가 쓴 글 토막을 나누겠습니다.
집 근처에 흐르는 와타라세 강에서 소중한 것을 배웠다. 내가 겨우 헤엄을 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니까, 초등학생 때였을 게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와타라세 강으로 헤엄을 치러 갔다. 그날은 물이 불어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살도 빨라서, 큰애들은 건너편 강기슭에 있는 바위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으나, 나는 겨우 개헤엄이나 치는 정도였기 때문에 얕은 곳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새 강 한가운데로 너무 들어가 버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있던 강기슭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물살이 점점 더 빨라지고 친구들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 버둥거리다가 얼마나 물을 들이켰는지 모른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군데군데 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도 있지만 흰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얕은 여울이 많았다. 아마 지금 내가 휩쓸러 가고 있는 곳은 내 키보다 깊지만, 물살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반드시 얕은 여울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는 몸의 방향을 180도 틀어서 이번에는 하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렇게 빠르게 흐르던 물살도 어느새 날마다 바라보던 와타라세 강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하류를 향해 얼마 동안 흘러가다가 발로 강바닥을 짚어 보았더니 그곳의 깊이는 이미 내 허벅지에도 차지 않았다.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때의 무서움보다는 그 무시무시한 물살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는 기쁨에 나는 가슴이 벅찼다.
앞날에 대해서나 지난날에 대해서 생각하며 괴로워하다가, 문득 급류에 떠내려가면서 본래 있던 강기슭으로 헤엄쳐 가려고 발버둥치던 내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쓸려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투병이라는 의식이 조금씩 옅어져 간 듯하다. 걷지 못하는 다리와 움직이지 않는 팔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면서 살아가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그 때! 별 생각 없이 읽어 넘기던 성서 구절이 마음속에 울려 퍼졌답니다.
묵인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시련과 함께 그것을 견디어 낼 방도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1 고린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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