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께서 우셨다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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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8-11-20 | 조회수54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우셨다 - 윤경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9,41-44)
올해 초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올리브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주님 눈물의 교회에 들어가 정면으로 마주치는 예루살렘 도성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키드론 계곡을 사이에 두고 연한 갈색의 도성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에서 내려다본 주변은 온통 돌무덤 터였습니다. 도성 가까이에 묻히면 천지개벽할 때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유다인이나 이슬람인을 가리지 않고 빽빽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수천 년 된 무덤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갖가지 감회가 떠올랐습니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주님을 제대로 모신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님눈물 교회는 성전에서 해가 뜨는 정 동쪽에 자리 잡아 그 당시에는 유다성전과 지성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슬람 황금사원의 지붕이 보이고 굳게 닫혀있는 황금의 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래쪽에 게쎄마니 교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 무릎 꿇고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니 마치 예수님 눈물방울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맑고 영롱한 주님의 눈물을 통해서 흐릿하게 펼쳐진 도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다면...!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이 한마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찾아오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바라는 인간적인 눈으로 주님을 기다렸던 예루살렘, 혹여 오늘날의 우리도 그렇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처럼 우리 입맛에 맞는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은지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이르신 평화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유다인 성전이 아니라 비록 이슬람 성전이 서있지만 더는 도성과 성전의 돌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때는 언제일까 묵상해보았습니다. 지나버린 과거적 사건일까? 아니면 먼 미래일까? 그러다 주님께서 오시기도 전에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습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주님께서 이미 오셨고 지금 여기에 계시지만, 다만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는 완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눈물 흘리시며 지금도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전 인류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특히 이슬람이나 불교도 등 외교인이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진정 변화하였나 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남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내 탓을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을 구하시리라고 약속했던 하느님이시기에 지금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이나마 지탱하는 까닭은 어딘가에 의인 열 명이 기도하고 계신 덕분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위태위태하나마 건사하는 지구의 모습을 돌아보며 감사의 묵주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온 세상은 인간의 헛된 욕심이 빗어낸 경제상황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무서운 것은 세상사람 모두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련에 닥칠수록 힘없고 경제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더 고생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실상 내게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지구는 타인이 아니라 한 유기체라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 졌습니다. 한쪽에서 나비 한 마리가 춤을 추면 온 세상에 폭풍이 친다는 사실이 그저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피부에 와 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나 한 사람의 일탈이 전 지구에 영향을 끼치며 나 한 사람의 회개가 혹시 인류를 구하는 시초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추고 각오를 세워야하겠습니다. 주님께 우리가 아직도 제대로 몰랐습니다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낯부끄럽기 그지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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