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학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신약성서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 단어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구 나자로의 장례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시로부터 거부당했을 때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슬픔은 내면 깊이에 있는 감성들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달리 말해, 자신의 내면의 감정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는 장면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예를 들면,
죽음이나 이별 등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어 버렸을 때
같은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부당했을 때
슬픔이 몰려오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십니다.
근본적인 관계의 단절로 인한 슬픔입니다.
예루살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 안에서
우리는 슬픔과 분노가 표현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계속해서 관계를 맺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 화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슬퍼해 보았자 더 나아 질 것이 뭐 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슬퍼하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반대로
우리는 눈물에 인색합니다.
우리의 문화가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흐느끼는 것을 약함의 표시라고 해석하고
감성을 이성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슬픔이 닥쳐왔을 때 강하게 처신하거나
절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고
그렇게 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문화에서는
있는 그대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거나 진실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은 여자든 남자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훌륭한 치료제입니다.
우는 것은 웃음처럼 감성적인 응답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물은 많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균형을 잃을 때,
이것을 회복하기 위한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연민이나 감상적으로 머물거나
절제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불행이 닥쳤을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을
스토아 사상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안에서 눈물은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런 좋은 약이 됩니다.
사랑의 눈물도, 고통과 상실로 인한 슬픔의 눈물도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제입니다.
아미스 멈퍼드의 시안에 슬펐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가 내 곁을 떠나
삶 저편으로 사라질 때,
펑펑 울어야 한다.
아이들도 그렇고,
남자라고 무슨 상관인가,
울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이기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를 잃었기에
슬퍼할 수 있다.
그것도 엉엉 목놓아 울 수 있다.
시편 저자인 다윗도 이렇게 울부짖었다...
“나의 한탄을 기록해 두소서.
이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아 두소서.”(시편 56,8)
그렇다, 눈물을 어찌 아니 흘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미스 멈퍼드는 슬픔을 통해 궁극적으로
웃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대가 있었던 곳은 과거라는 애벌레 집
그곳을 부수고 나왔을 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그대를 초대한 주님을 만날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웃으며
멀리 펼쳐진 미래의 창공을 바라보며 자유로이 날 수 있다.
새로운 길로 새겨진 영원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 4,18
죽음이 우리를 떼어놓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다.
당신의 부서진 마음을 그분께 가져가
그분이 치유할 수 있도록 하라.
어느 날 당신은 웃으며 이야기 할 것이다.
“나의 부서진 마음이 그분을 통해 치유 받았다.”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