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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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작은 요한아(마리아 발또르따 애칭), 많은 사람이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하겠지만, 때가 되기전에 영원하신 주님을 알고, 그분의 이 세상 생애를 아는 은혜를 받는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토마가 돌아오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아, 주기(週期)가 끝났다. 이것 다음에는 1944년 8월 9일에 본 믿지 않는 토마의 환영에 대한 이야기를 넣어라. 그러나 복음 전체가 씌어진 다음에는, 내가 처음부터 말한 것과 같이 성지 주일과 부활전 월, 화, 수요일과 목요일 아침나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네가 작년에 본 것중에서 따서 써넣어야 할 부분은 벌써 네게 일러 주었다. 밀리오리니 신부가 원하면, 내가 지금 일러 주는 작년의 받아쓴 것을 끼워넣어도 된다.
그리고 네가 받아쓴 것 중에서 론지노가 준 물 한 모금과 반대되는 것같이 보이는 한 귀절에 대해 지금의 너무나 많은 토마 같은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같은 사람들이 비판할 것을 예견하기 때문에… - 오! 작은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아, 초자연적인 것의 부정자들과 반대로 완전에 대한 이성론자들은 하느님의 인자와 네 희생으로 이룩되는 훌륭한 이 작품 전체에서 틈을 하나 찾아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하겠느냐? 그들은 위험한 이성주의의 곡괭이를 이 갈라진 틈에 넣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그 보잘 것 없는 물 한 모금, 핏줄에 피가 말라버리고 열이 나는 그 화재에 물 한 방울, 그것을 나는 사랑을 설득시켜 진리를 데려와야 하는 한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마셨고, 무자비한 매질로 하도 기진맥진해서 숨이 끊어지게 하고 삼키지를 못하게 하는 심한 헐떡임 속에서 더 할 수 없이 피로한 가운데 마셨는데, 그 물 한 모금은 초자연적이 아닌 다른 위안은 내게 주지 못하였다. 육체를 위하여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고통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때의 내 목마름에는 여러 강의 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 그리고 나는 심장 앞부분의 고통에 대한 극도의 불안 때문에 마실 수가 없었다. 너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지. … 그리고 내게는 여러 강물이 필요했을 터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내게 주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심해지는 호흡곤란 때문에 강물을 주어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강물을 주었더라면 내 마음이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겠느냐! 나는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받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동정도 사랑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동정이 없었다.
착한 사람들인 너희가 이 물 ‘한 모금’을 바라볼 때, 또는 믿지 않는 너희들이 이 물 ‘한 모금’을 분석 할 때에, 음료라는 말을 쓰지 말고 그것에 어울리는 ‘동정’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라. 그러므로 ‘내가 최후의 만찬부터는 위안을 받지 못했다’고 너희들이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해도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약물(藥物)을 탄 포도주를 마시기를 원치 않은 것에 비추어,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그 모든 군중에서 내게 위안을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초와 업신여김을 받았고, 배반을 당하고 매를 맞았다. 내가 받은 것은 이것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작년에는 왜 제가 론지노의 그 행동을 보지 못했을까요?’ 하고 네가 말했지. 그것은 네가 본 내 고문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서 공포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아직 묘사하고 보게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임박한 네 수난을 위해서 네게 격려를 주려고 여러 단계를 생략하고 빨리 나아갔다. 그러나 너는 내가 더 완전하게 더 평화롭게 내가 받은 모든 고문을 네게 거슬러 올라가게 하기 위해 너를 다시 데리고 다녀야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 평화가 완전한 것이냐? 오! 그렇지 않다. 인간은 내게서 안겨서 나와 융합하더라도 역시 인간이고, 따라서 언제나 인간으로서의 반응을 보이고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가질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하느님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을 절대적인 진실성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고 묘사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감정과 고통을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질 못할 것이다. 이것들도 벌써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이 지식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만이 오직 한 가지 할 일인데, 그렇게 하지않고 대부분의 사람이 책들을 들고는 조사하고, 헤아려보고, 역광(逆光)으로 보면서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무엇을 바랄 것이란 말이냐? 그야 이와 비슷한 다른 저서와의 모순을 찾아내서 뒤엎고, 뒤엎고 또 뒤엎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적인)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 이성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비평의 이름으로, 삼중으로 인간적인 교만의 이름으로. 인간이 얼마나 많은 거룩한 작품을 부수어서 그 잔해를 가지고 거룩하지 않은 건물을 지었느냐? 불쌍한 인간들아, 너희들은 순수한 금을 없앴다. 순수하고 귀중한 지혜의 금을. 그리고 금가루를 서투르게 칠한 화장 회반죽과 석고를 입혔는데, 그것은 생활과 사람들과 인간적인 혼란의 충격으로 이내 색이 흐릿하게 되고, 문둥병 같은 자국이 남게 되고, 멀지 않아 가루가 되어 버리고, 너희들의 지식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오! 너희들이 이해하고 느끼는 것만을, 즉 너희들 자신만을 믿는 불쌍한 토마 같은 인간들아! 그러나 하느님을 찬미하고, 내가 너희를 도와줄 터이니까 올라오도록 힘써라. 믿음과 사랑 안으로 올라오도록 말이다. 나는 사도들이 ‘영혼의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창피당하는 것을 원하였다. 제발 부탁이다. 이것은 특히 너희들, 내 사제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영혼의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평신도의 뒷자리에 앉는 창피를 받아들여라. 이 책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음서는 정말 너희들에게 바쳐진 것으로 이 복음서 안에서 스승인 주님이 당신 사제들의 손을 붙잡고 제자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그들 사제들이 제자들을 인도 할 수 있는 선생들이 되게 하며, 이 복음서 안에서 의사인 주님이 너희들을 병자들에게로-어떤 사람이나 다 영적인 병을 가지고 있으니까- 데리고 가서 병의 증세를 보여주고 치료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자, 와서 보아라. 와서 먹어라. 와서 마셔라. 그리고 거절하지 말아라. 또 작은 요한을 미워하지 말아라. 너희들 가운데 착한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거룩한 기쁨을 얻어낼 것이고, 성실한 학자들은 빛을 얻어낼 것이고, 방심은 하지만 악하지 않은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어낼 것이며, 악한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지식을 털어 놓을 방법을 얻을 낼 것이다. 그러나 작은 요한은 다만 고통과 피로만을 얻었고, 그것 때문에 작품이 끝나가는 지금은 마치 병으로 시들시들한 사람같이 되었다.
자, 그러면 내 친구이며 작은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의 친구들인 막달라 마리아와 요한, 마르타와 라자로와 시몬, 그리고 그가 피로할 때에 지켜준 천사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우리 친구 작은 요한이 도무지 기운이 없다. 그에게 영원한 강물을 가지고 가서 이렇게 말하자. 작은 요한아, 이리오너라, 네 태양을 쳐다보고 일어나라. 많은 사람이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하겠지만, 때가 되기전에 영원하신 주님을 알고, 그분의 이 세상 생애를 아는 은혜를 받는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오너라. 구세주와 그분의 친구들과 같이 그분의 집으로 가기에 앞서 우선 구세주께서 친구분들과 같이 네 집으로 오신다’하고.
편안히 있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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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의 사도가 최후의 만찬의 집 마당에 있다.
열성당원 시몬이 말한다. “토마가 없어진 것이 정말 슬퍼. 어디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하고 요한이 말한다.
“부모한테 가 있지도 않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대. 그자들에게 잡히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만일 그렇게 되었으면, 선생님이 ‘나머지 말은 여기 없는 사람이 돌아오면 말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거야.”
“맞아, 그렇지만 나는 또 베다니아에 가보겠어. 어쩌면 저 언덕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감히 나타나지 못하는지도 몰라.”
“시몬, 가보세, 가봐. 자네가 우리 모두를 다시 모았고… 우리를 모으는 일로 우리를 구했어. 우리를 라자로의 집으로 데려갔으니까 말이야. 주님이 라자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나? ‘내 이름으로 용서하고 인도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 왜 라자로를 가리옷 사람 대신 쓰지 않으실까?” 하고 마태오가 묻는다.
“그것은 완전한 친구에게 배반자의 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지”하고 필립보가 대답한다.
“내가 조금 전에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생선 장수들에게 말을 했을 때 들은 말인데… 오늘 새벽에 성전 지키는 사람들이 성전 구내에서 아직 밧줄이 목에 걸려 있는 썩은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거야. 내 생각에는 이교도들이 그 시체를 풀어서 성전 구내로 집어던진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이번에는 알패오의 야보고가 말한다. “나는 어제 저녁 샘터에서 들은 얘긴데, 벌써 어제 저녁에 배반자의 내장을 한나스의 집에 대고 던졌다는 거야. 틀림없이 이교도들이었을 거야. 히브리 사람은 아무도 닷새가 지난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을 거니까.” 요한은 그 생각을 하고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거기 가서 죽었지? 그곳은 그 사람의 땅이었나?”
“가리옷 유다에 대해서 정확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 사람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는지 생각들 해보게나….”
“얼마나 거짓말쟁이였는지, 라고 말해도 돼, 바르톨로메오. 그 사람은 솔직한 때가 도무지 없었어. 우리와 3년 동안을 같이 지내면서 그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가졌었지만, 그 사람 앞에 가면 마치 요새의 높은 성벽 앞에 있는 것 같았어.”
“요새의 성벽이라구? 아이고, 시몬! 차라리 미궁(迷宮)의 벽이라고 말하게!” 하고 알패오의 유다가 외친다.
“오! 이거봐! 그 사람 이야기는 그만두세! 우리가 그 삶을 불러내서, 그 사람이 와서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그 사람의 기억을 내게서와 히브리 사람이건 이방인이건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히브리 사람들의 경우에는 우리 민족에서 그런 괴물을 낳았다는 것 때문에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그 사람들 중에서 어느 날 ‘그 분을 배반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게 말이야. 나는 총각에 지나지 않으니까 자네들 앞에서 제일 먼저 말을 해서는 안 될 거야. 나는 제일 꼴찌고, 베드로 자네는 첫째야. 그리고 여기에는 유식한 열성당원과 바르톨로메오가 있고, 주님의 형제들도 있어. 그렇지만 말이야. 열두째 자리에 어떤 거룩한 사람을 빨리 넣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 집단 가운데 이 빈 자리를 보는 한 나는 우리를 가운데에 지옥이 입을 딱 벌리고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 들 것이고, 그 때문에 우리가 길을 잘못들까 봐 겁이나서 그래….”
“요한, 그럴 리가 없어! 자네는 소름끼치는 그의 죄와 목매 죽은 그의 시체 때문에 받은 깊은 인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어머니도 말씀하셨어. ‘가리옷의 유다를 볼 때에는 사탄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아리고! 이 자리에 받아들일 성인을 서둘러 찾도록 하세!”
“이거 봐. 나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겠어. 하느님이신 선생님이 가리옷 사람 같은 제자를 택하셨으니, 보잘 것 없는 베드로는 어떤 사람을 택하겠는가 말이야.”
“그렇지만 자네는 그렇게 해야 할 거야….”
“안 돼, 이 사람아, 나는 아무 것도 택하지 않겠어. 나는 주님께 그렇게 하시라고 청하겠어. 베드로는 죄를 넉넉히 지었단 말이야!”
“우리가 청할 것이 너무도 많아, 저번 날 저녁 우리는 얼빠진 사람 같았어. 그러나 우리는 배워야 해. 그것은… 어떤 일이 정말 죄인지 죄가 아닌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말이야. 주님이 이교도들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는 것과 얼마나 다르게 말씀하시는지 보란 말이야. 주님이 당신의 용서의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겁함과 부인(否認)을 얼마나 더 관대하게 보아주시는지 보란 말이야. … 아이고! 나는 잘못할까 봐 겁이나” 하고 알패오의 야보고가 낙담해서 말한다.
“정말이지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렇게도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일주일째 얼이 빠져 있어!” 하고 다른 야보고도 낙담해서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모두가 같은 처지이다. 그들은 이제는 그들이 생각해낸 최후의 해결책의 힘을 빌기로 한다. 그들은 “라자로를 가서 만나세” 하고 말한다. “거기서 주님을 만나뵈올지도 몰라, 그리고… 라자로가 우리를 도와줄 거야.”
누가 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엘리야가 토마와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오!” 하는 소리를 지른다. 하도 험상궂어서 그가 토마같이 보이지 않게 된 토마이다.
동료들은 그들의 기쁨을 소리높여 말하면서 그를 에워싼다.
“선생님이 부활하셔서 여기 오셨다는 걸 아나? 그리고 자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또 오시겠다고 말씀 하셨어!”
“응, 엘리야도 그 말을 했어. 그렇지만 난 믿지 않아.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믿는데, 내가 보는 것은 이제 우리는 끝장이 났다는 거야. 나는 우리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을 보고, 선생님을 생각하며 슬퍼할 무덤조차도 없어졌다는 것을 본단 말이야. 내가 보는 것은 최고회의가 그들의 공범을 더렵혀진 짐승처럼 묻으라고 포고(布告)해서 처치하고, 나자렛 선생의 충실한 제자들도 처치해 버리려고 한다는 거야. 나는 금요일에 성문에서 붙잡혔는데, 그들이 이렇게 말했어. ‘너도 그자의 제자였지. 이젠 그자가 죽었단 말이야. 가서 너 하던 일이나 다시 해’하고, 그래서 나는 도망쳤어….”
“그런데 어디로 갔었어. 우리는 자넬 사방으로 찾아다녔는데!”
“어디로 갔었느냐구? 라마에 있는 주님 집 쪽으로 갔지. 그러다가 감히 들어가지를 못했어. 유다의 산 여기저기로 헤매다니다가 어제는 마침내 베들레헴의 동굴에 갔었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나는 파편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에서 잤어. 엘리야가 왔다가 나를 거기서 찾아낸 거야. …엘리야가 왜 거길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왜 갔었느냐고요? 그야 너무 기쁘거나 너무 괴로울 때는 하느님을 더 느끼는 곳에 가는 법이니까 그렇지요. 나는 요 몇 해 동안 여러 번 선생님의 아기적 울음소리의 추억으로 영혼이 어루만져지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도둑처럼 밤에 그 곳엘 갔어요 그리고는 돌에 맞아 죽지 않으려고 해가 뜨면 빠져 나오곤 했지요. 그러나 나는 이미 위로 받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곳에 가서 ‘나는 행복하다’하고 말하고, 거기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을 가져오려고 갔어요. 우리는 그 분의 믿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곳 담의 한 조각, 흙 한 줌, 저 말뚝들의 거스러미 하나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갈바리아산의 흙을 감히 가져올 만큼 거룩하지 못합니다.
“엘리야, 당신 말이 옳아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고, 또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런데 토마는?....”
“토마는 자면서도 울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어나시오, 그리고 이젠 울지 마시오. 부활하셨어요.’ 토마는 내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내가 하도 끈질기게 역설하는 바람에 설득을 당했지요. 그래서 이렇게 온 겁니다. 이제는 토마가 여러분 가운데 있으니 나는 물러갑니다. 나는 갈릴래아로 가는 동료들과 합류합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엘리야는 간다.
“토마, 선생님은 부활하셨어. 내가 장담해. 우리와 같이 계셨어. 음식도 드시고, 말씀도 하셨어. 그리고 우리에게 강복하셨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어. 아이고! 자네는 왜 더 일찍 오지 않았나?”
토마는 낙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나는 안 믿어. 자네들은 유령을 본 거야. 자네들은 모두 미쳤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는 못하는 거야.”
“사람은 그렇지. 그러나 선생님은 하느님이셔. 자넨 그걸 안 믿나?”
“왜 안 믿어? 선생님이 하느님이시라는 건 나도 믿어. 그렇지만 바로 그걸 믿기 때문에 말하는 건데, 선생님이 아무리 착하실 수 있다해도, 당신을 그렇게 까지 별로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오실 정도로 착하실 수는 없단말이야. 선생님이 아무리 겸손하시다 해도 우리같이 심술궂은 사람들처럼 당신을 낮추는데는 이에서 신물이 나실 거란 그말이야. 그렇게는 안 돼, 선생님은 아마, 아니 틀림없이 하늘 나라에서 개선하셨어, 그리고 어쩌면 영처럼 우리에게 나타나실지도 몰라. 어쩌면이라고 했어. 우리는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도 없단 말이야! 그렇지만 살과 뼈를 가지고 부활하셨다는 건, 아니야, 아니야, 난 안 믿어.”
“그렇지만 우리가 선생님께 입맞춤을 하고, 음식드시는 걸 보고 목소리를 듣고, 손의 감촉을 느끼고, 상처를 보았는데도!”
“아무 것도 난 안 믿어. 믿을 수가 없어. 믿으려면 봐야 해. 선생님 손의 못자국을 보고 거기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또 선생님 발의 상처를 만져보지 않고, 창이 선생님의 옆구리를 뚫은 곳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나는 안 믿어. 나는 어린 아이나 여자가 아니야. 나는 명백한 사실을 원해. 내 이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절해. 그래서 자네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어.”
“아니 토마! 그럼 우리가 자넬 속이려고 하는 것 같은가?”
“이 사람들아, 그렇지는 않아, 오히려 그 반대지! 자네들이 착각으로 스스로 가지게 된 평화로 나를 데려가려고 할 만큼 친절한 자네들은 정말 행복하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의 부활은 믿지 않아.”
“자네는 선생님의 벌을 받을까봐 겁나지 않나?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다 듣고 보시고 한단 말이야. 알겠어?”
“나는 선생님이 나를 설득하기를 원해. 나는 이성이니까, 그 이성을 쓰는 거야. 만일 내 이성이 길을 잃었으면, 사람의 이성의 주인이신 선생님이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래.”
“그렇지만 이성은 자유가 있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 나는 자네들을 많이 사랑하고, 주님을 많이 사랑하네. 나는 내 힘 자라는 데까지 주님을 섬기겠고, 자네들이 주님을 섬기도록 돕기 위해 자네들과 같이 있을 걸세. 선생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겠어. 그렇지만 보아야만 믿을 수 있겠어.” 그러면서 고집이 센 토마는 자기 말밖에는 듣지 않는다.
“나는 보면 믿을 거야…”하고 되풀이한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믿는 것이 그렇게도 기분좋고 거룩할 텐데, 그것을 부인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의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유의점 : 이 책은 현재 명동성당 서점과 가톨릭회관 서점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서점 등 가톨릭 관련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특히 이 책에 대한 < 추천의 말씀 >과 < 비오 12세 교황님의 말씀 >과 < 신앙교리성성의 말씀 >은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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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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